시곗바늘에 새긴 인고의 시간

시간을 묻는 값

by 운곡


雲谷​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던 해, 부모님은 첫아들이자 장남인 내게 교복과 함께 손목에 세이코 시계 하나를 채워 주셨다.


당시로서는 제법 값이 나가는 물건이었고, 우리 반에서 시계를 찬 아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예닐곱 명쯤 되었을까....

쉬는 시간이나 운동장 한켠에서 친구들이 다가와 시간을 물으면, 나는 으레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야, 이 시계가 얼마짜리 줄 알아! 이걸 그냥 공짜로 알려달라고?


아이들은 야 이거 얼마야 진짜 비싸? 하며 시계 찬 손을 낚아채려 하고 나는 피해 도망가며 깔깔 웃었다. 조금 허세 섞인 장난이었다. 그러나 지금 와 돌이켜보면, 그 말속에는 이상하게도 일리가 숨어 있었다.


시간은 늘 공짜처럼 흐르지만, 그 시간을 정확히 가리키기 위해 누군가는 비용을 치렀던 것이다.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이 막 태동하던 헨리 포드 시대, 포드 자동차 공장의 전기 설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는데, 내부 기술자들이 다 달라붙어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당시 명성이 자자하던 한 전기 기술자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 기술자는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분주하게 손을 대지 않았다. 이틀 동안 세밀하게 관찰한 후 분필을 꺼내 배선과 기계들에 표시를 하고 그곳을 간단하게 고쳤다.

설비는 순식간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상 가동되었다.


며칠 뒤, 기술자는 1만 달러의 수리비를 청구하자 포드 측은 놀라며 명세서를 요구했고, 기술자는 명세서에

분필 값 1달러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아는 비용 9,999달러

이렇게 적어 내밀자 포드 측에서는 아무 말 없이 그 금액을 지불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지적 재산’과 ‘전문성의 가치’를 설명하는 데 자주 인용되는 이 일화는 내게 깨달음을 준다 비록 고친 시간은 짧았지만, 그 문제를 정확히 짚어낸 능력은 수십 년의 경험과 학습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의료 분야에서도 다르지 않다. MRI나 CT 같은 고가의 장비로 검사를 받으면 진료비는 단숨에 올라간다. 눈에 보이는 기계값도 있지만, 그 영상을 읽어내는 의사의 판단과 책임이 포함된 비용이기 때문이다.


또 기업 컨설팅 용역 비용이 건 당 수억 원에 달하고 심지어 수백억에 이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고서 몇 장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사례와 실패의 학습과 축적된 판단력을 기반으로 하는 통찰과 예측의 값이다.


지금은 저작권과 창작물 역시 분명한 자산으로 인정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저작권만큼은 아직 생활 속에서 가볍게 여겨지는 부분이 남아 있는 듯하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비싼 원서를 살 형편이 안 되면, 친구 한 명이 책을 사 오고 우리는 그것을 돌려가며 복사했다.


심지어 복사점에 가면 주인아주머니가 한 부 복사는 장 당 50원인데 한 권 통째로 복사하면 싸게 해 준다고 너스레를 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분명 범죄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저작권법은 사문화되어 형식에 그쳤고 그것은 공공연한 풍경이었다.


나는 그 시절 서예 공부를 했다. 지인들은 너무도 쉽게 가훈이나 명언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대가는 없었다. 무명인 나야 그렇다 쳐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조차 ‘한번 써주는 게 뭐가 어렵냐’는 식의 생각에 익숙했던 시절이었고 화가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악의라기보다 무지에 가까웠다. 붓을 잡기까지, 한 획을 얻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인내를 헤아리지 못했던 시대의 분위기였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손끝은 늘 가벼이 취급되었고, 그들의 시간과 무형의 노동은 공기처럼 소비되었다.


기술을 익히고, 감각을 다듬고, 자기만의 색깔을 갖기까지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졌지만 그 안에서 쌓아나가는 결은 결코 같지 않으며 천차만별이다.


기술이든 예술이든, 한 사람이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 수없이 반복된 실패와 인내를 안다면 결코 그 가치를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분필 자국 하나가 1만 달러가 되는 이유는, 그 자국이 단순한 표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축적된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12월 20일, 2025년 연말 기획특집으로 여덟 명의 무명 시인들과 함께 "아홉 시愛"라는 공저 시집을 출간했다.


비록 이름도, 유명세도 없지만 각자의 삶을 품은 시들이 모였다. 원고를 쓰고 고치고, 서로의 문장을 읽고 응원하던 그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심지어 한 줄의 시어를 놓고 밤을 새우기도 하며 적지 않은 진통을 겪고 탄생한 시집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책에 ‘저작권이 발생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생각보다 깊은 뿌듯함을 느꼈다.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쓴 문장이, 우리가 보낸 시간과 마음이 하나의 권리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그것은 비로소 창작이 존중받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제는 안다. 시간을 묻는 데도 값이 있고, 문제를 알아보는 데도 값이 있으며, 한 편의 시를 쓰는 데에도 분명한 값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계산서에 적히지 않더라도, 삶의 무게로 남는다.


어릴 적 내가 던졌던 “시간 공짜로 묻지 말라”는 농담은,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나 역시 여전히 많은 시간을 묻고,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시간과 답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값을 얼마나 정직하게 치렀을까?

무형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소중하다.


어쩌면 저작권이란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작가의 긴 인고의 세월과 창작의 진통을 견뎌낸 마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그 시간에 대해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가깝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일수록, 시곗바늘은 결코 헛되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雲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