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처럼 달리며 소처럼 생각하라

by 운곡

운곡의 말 안 되는 듯 말 되는 이야기 시리즈 5


雲谷​


feat. 예가체프 향기 속에 떠오르는 병오년의 새해 아침


2026 병오(丙午) 불의해, 붉은말의 해가 열렸다. 예로부터 말은 생동과 열정, 끊임없는 전진의 상징이었다.


천간 ‘병(丙)’과, 지지 ‘오(午)’가 모두 불의 기운을 품고 있어 명리학에서는 이런 때를 간여 지동(干與地同), 곧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이 서로 닮아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붉게 타오르는 해다.

나는 문득 그 ‘뜨거움’ 속의 위험을 생각해 본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균형 속에 있을 때 아름답고, 불의 힘도 조화로울 때 온기를 나누지, 지나치면 과유불급의 재해가 된다.


모든 강인함이 가지는 견인력에는 언제나 균형의 문제가 생긴다. 모든 것이 좋을 수만은 없다.


우생 마사(牛生馬死) —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소와 말을 저수지로 몰아넣으면 말은 재빠르게 헤엄을 쳐 나오지만 소는 아무리 급해도 제 속도로 느릿느릿 물길을 헤쳐 나온다.


모두들 말의 기세에 감탄하고, 소의 느림을 비웃지만. 그러나 장마철이 되어 물이 불어난 강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말은 제힘만 믿고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다 지쳐 익사하지만, 소는 그 물결의 흐름에 몸을 맡겨 강의 끝자락 어딘가에서 살아남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 누구나 말처럼 빠르게 달리고 싶고, 앞서 나가고 싶고,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지만, 우리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내가 살아보니 삶은 42.195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었다. 초반의 질주가 눈부셔도 지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말처럼 기진맥진하여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인생의 진짜 승부는 언제나 끝자락에서 드러난다.


병오년의 기운은 우리 마음의 엔진을 달궈줄 것이다. 멈춘 계절을 녹이고, 닫힌 문을 열게 하며, 정체된 흐름을 일으킨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에게는 그 뜨거움을 견디고 다스릴 ‘물의 지혜’가 필요하다. 불이 하늘에서 내리는 뜻이라면, 물은 땅이 품은 길이다. 불이 솟으면 물은 흐르고, 불이 타오르면 물은 식힌다. 이 두 기운의 조화가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은 조용히 순환한다.


붉은말의 해라고 모두가 달려야 한다고 말하는 해에 나는 왜 자꾸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까?


추진력과 결단력은 단기전에서 빛나지만, 세상을 살아내는 일은 장기 전이기 때문이다.


말처럼 서두르지 말고, 가끔은 멈추고 소처럼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할 때를 잘 알아야 한다.


인내와 균형, 그리고 끈기가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준다.


강을 건너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흐름이다. 나는 새해의 첫날, 달력 한켠에 이렇게 적어본다.

‘말처럼 달리되, 소처럼 생각하라.’


그 말속에 내게 주어진 한 해의 과제가 담겨 있다. 병오년의 붉은말이 가진 불의 기운은 분명 희망과 용기의 불씨다.


그러나 그 불이 다른 이의 마음을 데우는 따뜻한 난로가 될지, 나 자신을 소멸시킬 화염이 될지는 내 선택에 달려 있다.


센 불의 화력은 잠시지만, 은근한 불잉걸은 오래간다.


문득 1996년에 북한의 집중호우 시 떠내려온 북녘의 소 이야기가 생각난다. 거친 물살에 떠밀려 남쪽으로 내려온 그 한 마리의 소는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묘한 감정을 남겼다.


아무 말 못 하는 짐승 하나가 무심히 국경을 넘어, 이 땅의 사람들에게 오래된 상처와 그리움을 일깨우게 했다.


평화의 소로 이름을 얻고 이 땅에서 장수하였다. 소처럼 물결에 몸을 맡긴다는 건, 곧 하늘의 뜻을 따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병오년, 모든 것이 뜨겁게 타오를 이 시기에 나는 내 안의 불을 조심스레 다스려 보고 싶다. 타오르는 불길이 화마(火馬)가 되어 나의 욕심이 아닌 나의 인생을 힘차게 견인하는 에너지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물결처럼 흘러가야 할 때에는 두려움 없이 몸을 맡기고 싶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히 버티는 일이 아니라, 흘러가는 법을 아는 것이다.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이 하나로 만나는 간여 지동의 해 그 뜻이 내 삶 속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열심과 여유, 추진과 인내, 뜨거움과 차분함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흐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불과 물의 조화를 이룬 셈이다.


병오년 새해 아침, 나는 늘 즐기는 에티오피아 예가 체프 커피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불의 기운을 본다.


외출 준비를 하며 남향집 베란다 창 너머로 먼 하늘 너머에서 희미한 겨울 햇살이 퍼진다. 약간 붉은색을 띤 아침의 빛이 유난히 따뜻하다. 그 불빛 한 줄기가 올해 나의 운명을 말해주는 듯하다.

병오년, 이 한 해를 뜨겁지만 온화하게, 느릿하지만 깊게 살아가고 싶다.

雲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