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死因)

어머니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 운곡

雲谷

난 1월 초, 국민배우 안성기 선생의 별세 뉴스에 아직은 우리 곁에 좀 더 계셔도 되는데 싶어 마음 한켠이 어수선했다.

그는 오랜 시간 혈액암과 싸워왔지만, 정작 생을 멈추게 한 것은 병이 아니라 식사 중 기도로 넘어간 음식물로 인한 사고였다는 소식은 내게 조용한 경각심으로 다가왔다.


소식 이후 올해 만 아흔이 되신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미 충분히 많은 시간을 살아오신 듯 보이지만, 자식들의 마음속에서 어머니는 여전히 하루하루 지켜드려야 할 존재다.


머니의 삶은 늘 가족을 향해 있었고, 당신의 아픔은 언제나 뒤로 밀려났다.

어쩌면 지금의 투병은 병과 싸우는 시간 이라기보다, 긴 세월 쌓여온 당신의 한(恨)과 조용히 마주하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머니는 고혈압과 중증 당뇨, 관절 질환을 안고 수십 년을 살아오셨다.

50대부터 이어진 병원 기록은 한 번도 끊긴 적이 없었다.


든다섯을 넘기신 어느 날 나는 해외에서 귀국하여 어머니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었다.

새벽녘 갑자기 어머니는 고통스러워하셨고 나는 잠결에도 직감적으로 어머니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재빨리 119에 도움을 요청해 대학 병원 중환자실로 모셨다.

급성 폐렴과 기타 합병증으로 심각한 상태였고 담당 의사는 조용히 그러나 무거운 목소리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머니는 꼬박 일주일의 사투 끝에 의식을 되찾으시고 일반 병실로 내려왔다.

그 뒤 한 차례 더 응급실로 가셨고 우리 5남매는 정말‘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으나 또 한 번의 작은 기적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오셨다.


시의 어머니의 눈빛에는 삶을 붙드는 분명한 의지가 살아 있었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말이 눈에 담겨 있었다.


지만 지난해 추석 무렵의 낙상은 달랐다. 새벽녘 화장실에 가시다 넘어져 어둠 속 몇 시간을 고통 속에 홀로 공포와 사투를 하셨다. 아침에 인슐린 주사기를 들고 온 작은 며느리가 발견하고 급히 병원으로 모셨다.

넘어짐은 한순간이었고, 골반 근처의 대퇴골 골절이라는 참담한 결과와 분초를 다투는 긴급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생명을 즉각 위협하는 상태는 아니지만 만약 합병증이 온다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 치명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후 생각보다 긴 와병은 어머니의 시간을 천천히 바꾸어 놓았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지쳐갔다. 여든 후반까지도 또렷하시던 삶의 의지는 점차 체념으로 기울었고,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반복되는 재활 치료와 말없이 흘러가는 하루 들 속에서 병이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버텨야 하는 시간이 마음을 먼저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시는 듯했다.


즘 우리는 어머니의 병상을 자주 찾지 못한다.

오 남매가 돌아가며 돌보고는 있지만, 각자의 삶과 현실 앞에서 병실을 지키는 시간은 늘 부족하다. 어머니는 요양 병원에 계시고, 그곳의 하루는 유난히 길다.

면회를 하면 어머니는 언제나 바쁜데 뭐 하러 자주 오노.. 하시며 여기 생활이 편하고 좋다고 말씀하시지만 자식들의 방문에 언제나 표정은 아이들 마냥 좋아하신다.

면회 시간이 끝난 뒤에도 남는 것은, 다시 혼자가 되는 어머니의 시간이다.


실을 나서며 돌아보지 않으려 해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마다 마음 한켠이 무너진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가느냐”는 소리가 말 대신 서운한 눈빛으로 우리를 따라온다...


머니 곁을 지키지 못하는 자식들의 마음은 늘 변명으로 가득하지만, 그 모든 이유가 어머니의 외로움을 덜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께하지 못하는 시간만큼 어머니의 하루가 외롭지 않도록 더 세심히 살피려 애쓴다.

삼킴이 힘들어지면 음식을 바꾸고, 감염의 기미는 담당 보호사를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을 한다.


이켜보면 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멜로드라마 보다 외팔이 검객 왕우가 출연한 검객 영화를 더 좋아하셨다.

그것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억척스럽게 가정을 책임져야 했던, 한 집안의 여장부(女丈夫)로서 스스로를 담금질하던 당신만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뒤 어린 아들이 한쪽 팔 소매를 빼고 한 손으로 흉내를 내며 신나 하는 모습을 보시곤 언제나 빙그레 웃으셨다.

어쩌면 당신의 기호라기보다 어린 장남의 취향에 맞추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어머니는 가장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입고 사느라 '여성'이라는 이름의 부드러움은 평생 당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화장하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늘 새 옷보다 헌 옷이 익숙했고, 좋은 음식은 항상 자식들 몫이었다.


제야 나는 어머니의 구부정한 등 뒤로 가려진 한 여자의 일생을 본다.

이번에는 언젠가 어머니의 시선이 잠시 머문 짙은 핑크색 폼포넬라 장미 100송이 꽃다발을 들고 가려한다.

무거운 여장부의 짐을 내려놓은 자리에, 늦게나마 여자로서의 향기가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오 남매는 조용히 다짐한다.

고 안성기 선생의 경우처럼 죽음은 한순간에 예고 없이 찾아오겠지만 적어도 사인(死因)이 사랑 결핍에서 오는 외로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에 있지 못한 시간만큼, 마음 만은 떠나 있지 않겠다고. 마지막까지 사람으로서 존중받으며 살아가실 수 있도록 좀 더 가까이 어머니 곁을 지키며 그간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사와, 미안함과, 사랑을 담아 자식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雲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