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가짜 의사와 진짜 환자
雲谷
며칠 전, 손녀는 어린이집에서 배운 병원놀이 기구를 할아버지집으로 가져왔다.
장난감 청진기를 들고 가장 먼저 할아버지를 눕혔다. 청진기를 내 가슴에 대며 앙다문 입술사이로 제법 진지하게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장난감 주사기를 팔에 찌르는 시늉을 하고, 반창고를 떼어 옷 위에 턱 붙여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한지,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다음은 할머니 차례 진료를 마친 뒤, 이번에는 자기가 환자가 될 테니 할아버지가 의사를 하란다.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의사가 되어 손녀를 진료했다. 배를 만져주며 가짜 의사 노릇을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손녀가 배가 아프다고 징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장난인 줄 알고 배를 쓰다듬어 주었지만, 손녀를 안아 든 아내의 표정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할머니의 촉은 달랐다. 이마에 손을 얹더니 미열이 느껴진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손녀는 미처 화장실에 가지도 못한 채 설사를 하고 말았다.
급히 응급실로 향했고 진단은 노로 바이러스에 의한 식중독 성 장염이었다. 링거를 맞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며느리에게 같은 증상이 나타났고, 아들과 아내마저 온 가족이 차례차례 쓰러지는데, 나는 이상하게 멀쩡했다.
젊은 사람들이 체력이 약하다느니,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느니 하며 너스레를 떨면서 나는 면역력 향상을 위해 홍삼 진액도 먹고 체력 향상을 위해 매일 만보 이상 걷는다며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인생은 늘 말 많은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다.
가족들이 회복될 즈음, 내 몸이 으슬거리고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목이 붓고, 배가 아파왔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다리가 풀렸고 고목이 쓰러지듯 침대 위로 무너졌다.
병원에서는 노로바이러스 장염에 감기 몸살까지 겹쳤다고 했다.
아내가 웃으며 “그 자랑하던 면역력은 어디로 갔어요? ” 하고 물었지만
입을 꾹 닫고 이틀을 앓아누웠다. 장염은 나의 오만을 응징함과 동시에 혹독하게 나의 체면마저도 구겨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식구들은 비교적 가볍게 지나갔는데, 면역력 자랑을 하던 나만 가장 혹독했다.
나는 사흘이 지나서야 겨우 일어났지만 그마저도 몸은 여전히 개운치 않았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여름이면 배탈을 자주 앓았는데, 시골에서 오신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나를 눕히고 어디 보자 우리 손주~ 할미손은 약손이다 하시며 손을 배로 쓰윽 가져오면 나는 간지럼을 많이 타는 체질이라 처음엔 할머니 손길에 몸이 사려졌지만 할머니가 배를 한참 쓰다듬어 주시면 신기하게도 괜찮아지곤 했다.
그 시절 배탈은 주로 가난한 배고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지금의 바이러스는 풍요의 산물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이 바이러스가 전염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노로 바이러스가 온 집안을 훑고 지나간 그 며칠 동안 내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늘 건강이 의지와 체력의 문제라고 믿었다.
운동하고, 버티고, 참으면 되는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보니 건강은 자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몸은 어느 순간 말을 듣지 않았고, 면역력이라는 것도 스스로 자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몸은 좀 어때요 하며 안위를 묻는 척하더니 불쑥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말이야.”... 하면서 입을 삐쭉 내어 보인다..
그 말속에는 핀잔보다 걱정이, 농담보다 사랑이 더 많이 들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며칠의 병치레는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작은 예방접종 같은 시간이었다.
몸은 약해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단단해졌고, 면역력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배웠다.
결국 우리를 회복시킨 것은 링거도, 면역력도 아닌 함께 웃고 돌보는 가족들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조심해야 할 나이가 되었고, 겸손해야 할 몸을 살고 있다는 것을.
어느 틈에 회복된 손녀는 또 병원놀이를 하자고 한다. 이번에는 내가 진짜 환자다.
장난감 주사기를 들이대며 진지하게 주사를 놓고는 할아버지 이제 괜찮아하고 묻는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우리 가족은 평상심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뒤늦게 가장 아팠던 사람으로서 느낀 것은
노년의 건강이란
강함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를 살피며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이는 올 겨울이 나에게 준 교훈이었고. 마음의 노트에 받아 적었다.
雲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