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칼럼 운곡(雲谷)의 시선(視線)
feat. 84달러의 축복 3만 달러의 고민
1961년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84달러 시절에 아이를 여섯이나 키우던 우리가 이제 3만 6천 달러가 되었는데도 아이 하나조차 버거워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3남 1녀는 하늘도 부러워한다”는 말이 있었다.
우리 집은 2남 3녀로 당시 기준으로는 적당한 자녀 수였지만 그 적당함 마저 이제 전설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주변 친구들 집 이야기를 들으면 친가와 외가를 합쳐 사촌이 백 명을 훌쩍 넘는 집도 있었고 열 남매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대를 이을 아들을 기다리다 오공주, 칠공주는 예사였던 시절 딸 아홉 끝에 겨우 얻은 금쪽이 막내아들 사연조차 지금은 먼 옛이야기가 되었다.
아들을 염원하는 마음이 이름에까지 묻어 끝남이, 끝순이, 말순이, 말자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들도 우리 주변에 많았다.
내 이종사촌 형 한 분은 올해 연세가 일흔아홉이다.
그 형에게는 딸이 다섯 있다. 그 집안 사연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더 깊어진다.
형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 이모부는 삼대독자였다. 대를 잇는 일에 대한 부담과 기대가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모부는 당신 대에서 아들 다섯, 딸 하나를 두는 그야말로 ‘잭팟’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집 장남, 바로 내 이종 사촌 형은 내리 다섯 공주를 낳았고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았다.
아들을 향한 세대의 갈증을 다섯 꽃송이로 부족함을 지워버리고 단란함으로 피워낸 일흔아홉 노인의 지혜가 한 시대의 증언이 되었다.
또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J는 아들 둘이 모두 미국 시민권자다.
둘 다 결혼하여 미국에서 살고 있고 나이도 이제 마흔을 바라보지만 아직 아이가 없다.
친구는 아들들과 전화를 걸 때마다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이제는 손주 얼굴도 좀 봐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하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말,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뿐이다. 친구의 속은 점점 타들어 간다.
내 손녀 이야기나 손녀의 재롱 영상을 단톡방에 올리면 친구 J는 노골적으로 부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마치 자기 손녀처럼 진심으로 귀여워해 주고 좋아한다.
친구의 간절하게 손자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우리 때와는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그들은 부모의 기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세대가 꿈꾸던 결혼 출산 양육이라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손수건 돌리듯 자신의 손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되어버린 시대를 직시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기심인지 아니면 폭탄을 안고 살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생존술인지 나는 쉽게 단정하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더 이상 ‘자연스러운 인생의 순서’가 아니라
수많은 계산과 고민 끝에 결정해야 할 선택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친구는 얼마 전 아들로부터 희망적인 메시지를 받고 올해는 희미한 불씨 하나를 붙잡은 듯하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의 평균 자녀 수는 여섯 명이었다.
가정을 가진 국민 절반은 여섯 명보다 적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여섯 명 이상을 낳아 길렀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곱, 여덟은 물론 열 명이 넘는 형제를 둔 집도 그다지 놀라운 풍경은 아니었다.
1961년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시작했고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골목마다 붙었다.
80년대에 이르러서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로 더 강해졌고 1996년이 되어서야
그 정책은 저출산의 심각성에 밀려 조용히 철회되었지만 출산율은 돌아오지 않았다.
2025년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80명대 회복 전망으로, 세계 평균 2.4명에 한참 못 미치는 사실상 세계 최저 수준이다.
1인당 GDP는 약 60여 년 사이 무려 400배 이상 증가했고 그 시절 상위 0.01%도 꿈꾸지 못했던 편의를 누리면서도 가장 기본적이었던 4인가족의 구성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가족은 작아졌고 양육의 부담은 고스란히 부부의 몫이 되었으며 사교육비와 주거비는
상상을 초월했고 부모의 시간은 늘 부족하다.
공동으로 아이를 키우던 그 느슨하지만 따뜻했던 질서는 어느새 사라졌다.
이제 ‘4인 가족’이라는 말은 더 이상 평범한 기본 값이 아닌 선택이 되었고, 때로는 감히 꿈꾸기 어려운 삶의 형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본다 어디서부터 잘못 끼워졌을까?
요즈음 쏟아내는 달콤한 정책 몇 가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리 단순하지 않을 것이 합계 출산율이라는 차가운 숫자 속에 그 해답이 숨어있는 듯하다.
경제 성장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가 돈을 풀어도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드는 마음의 양육비가 천정부지로 오른다.
주거와 교육의 부담을 덜고 노인 방문 요양사 제도처럼 가정 방문 육아 지도사 제도 도입이나 맞벌이 부부를 위해 어린이 집 운영을 파격적으로 개방하여 국가와 사회가 돌봄의 일부를 함께 짊어지는 새로운 구조와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과거의 지혜를 지금의 언어로 진지하게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라 생각한다.
‘4인 가족’이라는 참으로 평범했던 삶을 누리기 어려워진 시대.
우리는 어떻게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할까?
과연 우리는 이 평범한 삶을 다시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둘째 손주를 기다리는 내 마음의 손과 손사래를 치던 아들 부부의 손 사이의 거리가 그 물음에 답을 해주는 듯하다....
운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