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방글라데시에서 만난 나의 가족
雲谷
내가 방글라데시에서 함께 살던 냥이는
참으로 경이로운 녀석이었다.
그 녀석의 이름은 가시나였다.
새끼 때 너무 귀여워서
그냥 암컷이라 짐작하고
경상도 말로 “가시나”라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크면서 보니 수컷이었다.
더 재미있는 건
당시 방글라데시의 독재 정권 총리 이름이
‘하시나’였다는 사실이다.
현지인들은 내가 “가시나”를 부를 때마다
“하시나?” 하며
늘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고양이 이름 하나에
정치와 언어가 겹쳐지는 풍경이
지금 생각해도 묘하게 웃음이 난다.
가시나는 한국말은 기본으로 알아들었고,
영어도 곧잘 이해했다.
거기에 방글라데시 원어민들이 집에 오면
그 말까지 알아듣는 눈치였다.
물론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톤과 표정, 반복되는 소리를 기억했을 테지만
나는 가끔
그 녀석이 사람의 말을 배운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 언어를 먼저 익힌 게 아닐까
혼자서 엉뚱한 생각을 하곤 했다.
가시나는 내가 “wait” 하면 꼭 한 박자 멈췄다.
먹을 것이 코앞에 있어도
한국말로 “차렷”이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으면
가만히 기다렸다.
말을 알아들었다기보다
내 삶의 리듬을
온몸으로 외운 듯했다.
타국에서 혼자 살던 시간,
집은 늘 조용했고
저녁이 되면 공기는 더 무거워졌다.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 고양이였다.
하지만 그 녀석은
‘짐승’이라는 단어로 묶어두기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지쳐 소파에 몸을 던지면
괜히 울지도, 보채지도 않았다.
조용히 곁에 와 앉아
숨소리만 나눴다.
배려라는 것이 무엇인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존재처럼.
혼자 사는 나의 가족의 빈자리를
그 녀석이 채워주고 있었다는 걸
나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같이 살았지만
의지하고 있었고,
내가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돌봄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언어를 몇 개나 알아듣느냐보다
더 놀라운 건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리는 마음이었다.
진짜 가족이란
같은 피를 나눈 존재가 아니라
같은 시간을 견뎌준 존재라는 걸...
방글라데시의 작은 집에서
나는 고양이 한 마리에게 배웠다.
오늘,
그 녀석이 유난히 보고 싶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끝내 데려오지 못한 일이
마치 그 녀석에게
배신을 저지른 것만 같아
마음 한켠이 오래도록 아프다.
雲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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