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우리 가족의 최애 음식 소고깃국)
운곡 김정익
1960년대 부산의 겨울 아침, 바닷바람은 뼛속까지 에이는 칼바람이었다.
다른 도시와 다르지 않게, 겨울은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을 간절히 부르는 계절이었다.
나의 기억 속 겨울 아침 풍경은 그 칼날 같은 찬바람을 단숨에 녹여주던,
진한 소고깃국 냄새가 우리 집 부엌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든든한 아침의 한 끼는 녹녹지 않은 겨울철 삭풍으로부터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었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고깃국이 있었다.
그 시절 고깃국은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음식이었다.
남과 북을 막론하고, 쌀밥과 함께한 고깃국은 꿈이자 바람이었으며, 가족을 위한 최고의 음식이었다.
1962년 즈음,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64년까지 모든 인민이 기와집에서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아직도 요원하지만,....
60년대 유년 시절의 나에게,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흰쌀밥과 소고깃국은 그야말로 최고의 호사였다.
서울식 고깃국은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담백하게 끓여 내어 소고기뭇국이라고 했다.
경상도식은 고춧가루를 넣어 약간 얼큰하게 끓여 낸다
젊은 시절 서울로 이사 와서 처음 접한 소고기뭇국은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지금도 역시다...
우리 집의 오 남매는 모두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모든 고기 요리를 소고기로만 하셨고,
장조림도 물론 돼지고기로는 만들지 않으셨다.
자연스레, 소고깃국은 우리 가족의 '최애 음식'이 되었다.
소고깃국을 끓이는 날이면
부엌 가득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먼저 퍼졌다.
약간 두툼하게 어슷 썬 무가 투명해질 때까지 보글보글 익어가는 소리,
뚜껑을 열 때마다 피어오르던 맑고 진한 국물 향기.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가족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아침부터 고깃국이네? 오늘 무신 날이가? 누가 온나?”
아버지는 종종 그렇게 웃으며 물으셨지만,
어머니는 말없이 국자로 국을 한 번 휘젓고는 다시 불 앞을 지키셨다.
그건 누구를 위한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냥 우리 가족을 위한 평범한 아침이었다.
어머니는 소고깃국을 끓일 때 먼저 국거리 고기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들기름에 달달 볶으셨다.
무는 얇으면 국에 녹아버려 “국맛이 제대로 안 우러난다고 하시며 한 손으로 무를 잡으시고 칼로 어슷어슷 제법 큼직하게 썰어 넣으셨다.
사실 나는 큼직한 무가 좋았지만 어린 동생들은 큰 무가 부담스러운지 골라내기도 했다.
정육점에서 국거리를 사실 때는 주로 양지머리를 사셨고 가끔 장조림을 하실 때는 홍두깨살보다는 아롱사태를 사셨다.
그리고 “차돌박이 기름 좀 따로 넣어 주이소.” 라는 말을 꼭 하셨다
그러면 넉넉한 덩치만큼이나 맘씨 좋은 정육점 아저씨는
한 덩이를 듬성 썰어 덤으로 국거리와 함께 요즈음은 생소한 "우수이다" 라는 박판지에 능숙하게 고기를 싸서 봉지에 넣어 주셨다.
차돌의 기름은 다른 부위의 소고기 기름과 다르다.
고소하면서도 물컹거리지 않고,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어머니는 참기름은 잘 쓰지 않으셨다.
“들기름을 고집하셨다.
그 작은 고집이,
소고깃국의 깊은 맛을 만들어냈다.
활활 타오르는 연탄의 센 불에서 한소끔 끓여 낸 다음 연탄불의 뚜껑 조절하여 무가 투명해질 때까지 중 약불에 끓인다 은근히 뒷심이 좋은 연탄불의 집요한 추궁은 재료가 품은 마지막 한 방울의 깊은 맛까지
국물 속에 녹여냈고 어머니는 귀신같이 그때를 잘 아셨다.
그렇게 우려낸 국물 맛은 지금의 가스레인지 나 인덕션 레인지로는 아마 재현 불가능할 것 같다.
그 국물에 밥을 말고 김치를 얹어 한 숟갈 떠먹으면,
어린 내 입맛에도 절로 감탄이 나왔다.
뜨거운 국물은 목을 타고 내려가며 묘하게 속을 자극하였고 나는 그 느낌이 좋았다...
어느새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엄마, 밥 좀 더 주이소” 하면,
어머니는 밥을 덜어주시며 국물을 한 국자 푸짐히 더 떠주셨다.
“소고깃국은 밥을 열두 번 말아도 그 향이 살아있다 아이가.”.... 하시며 웃으셨다
가끔 아버지 입맛에 맞추어 좀 더
얼큰한 국을 끓이실 때는 콩나물 대신 숙주를 넣으셨다.
콩나물은 아삭한 식감과 풋풋한 풍미로 국물에 깊이를 더했고,
숙주는 깔끔한 맛으로 소고기의 육향을 살려주었다.
어머니는 연탄불 옆에 쪼그려 앉아 요리하는 동안,
숙주라는 이름의 유래를 재미나게 들려주셨다.
“옛날 조선시대 신숙주가 어린 임금을 배신했대.
지조 없이 잘 변한다고 해서, 금방 쉬는 숙주나물에 그 이름을 붙였지.”
그렇게 나는 학교보다 먼저 어머니에게서 역사를 배웠다.
세월이 흘러 5남매가 모두 출가한 후에도,
처갓집에 오는 세 명의 사위들에게
어머니의 소고깃국은 단연 최고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아흔이 되신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소고기 국을 끓이지 않으신다.
눈에 띄게 쇠약해진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이 저릿해진다.
이제는 그 소고깃국을 내가 끓인다.
무를 어슷 썰고, 고기를 손질하고, 찬물에 핏물도 빼고 들기름으로 볶은 다음 차돌 기름까지 넣는 기교를 부리며 어머니 흉내를 내어본다.
하지만
그 맛은 언제나 어머니의 것과는 다르다.
아직은 국물에 스며든 세월이 부족해서일까.
그땐 몰랐지만
그 국물엔 어머니의 수고로운 땀과
가족을 향한 사랑이 함께 끓고 있었고
국물 속에 같이 녹아내려 깊게 배어 있었다.
그래도,
내가 끓인 국을 한 숟갈 떠먹는 순간
나의 오감은 다시 그 시절로 향한다...
연탄불 옆, 입김 호호 불며 어머니 옆에 앉아 있던 어린 나,
얌전하게 어머니의 소고깃국을 기다리던 동생들..
말없이 국을 푸시던 어머니의 뒷모습까지 소고기 국 위로 겹쳐진다.
식탁 위엔
다시 그때의 국물 냄새가 피어오른다.
어머니는 항상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식성을 떠올리며 간을 맞추셨다.
짜게 드시는 아버지를 위해 국을 퍼시고는 소금 한 꼬집으로 추가 간을 해 드렸고..
사위들이 오면 꼭 물으셨다.
“간이 맞나?”
특별히 짜게 먹지 않는 이들에겐
어머니의 간은 언제나 딱 맞았다.
아내는 내가 끓여주는 소고깃국을 참 좋아한다...
나도 어머니처럼 항상 묻는다 간이 맞나???
아내는 언제나 "엄지 척"이다...
그런 아내에게 가끔은 "내를 부리 물라꼬 저러나"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얼굴을 보면 진짜 맛있어하는 표정이다.
나는 아내의 그런 표정을 언제나 좋아한다..
그래서 가족을 위한 소고깃국을 끓일 때는
레시피대로만 후다닥 만드는 영혼 없는 요리가 아닌,
어머니처럼 사랑과 정성을 끓여 낸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
그 깊은 정을 국물 속에 담아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향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긴 세월의 내공을 껴안고, 삶의 무늬를 또 다른 언어로 그려 내려고 고민합니다. 가슴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지나온 날들의 바람 소리, 잊히지 않는 얼굴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물결로 엮어 실개천에 조용히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한 줄한 줄의 문장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별빛처럼 가슴 깊은 곳에 내려앉길 바랍니다.
우수이다(박판지)
うすいた [薄板]
단어장
얇은 널빤지
사진출처 Daum(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