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at. 운곡의 살아서 여는 장례식
운곡 김정익
1. 뜻밖의 전화
며칠 전, 경주에서 반가운 친구가 찾아왔다.
그날 그 친구는, 갑자기 서울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예정에도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고 했다.
고속도로 한 휴게소에서 걸려온 전화.
"나 지금 서울 가는 길이야. J가 하는 식당에서 보자. 두어 시간 뒤면 도착하겠다."
그 한마디에 나는 주변을 황급히 정리하고,
방화동 고향 친구의 식당으로 향했다.
거의 일 년 만의 재회였지만,
마주 앉으니 마치 어제 차 한 잔 나누고 헤어진 사람처럼
그저 반가운 숨결이 오갔다.
2. 불쑥 던진 제안
식사 도중, 그가 불쑥 꺼냈다.
"인생은 길고도 짧은 여정이야.
80쯤 되면 그 길을 되돌아보게 되지.
어릴 적 부산 골목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뛰놀던 날들,
웃고 울던 순간들…
이제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보내야 할 때가 다가오잖아.
그전에 우리, 좋은 날 골라 살았을 때 합동 장례식을 치르는 건 어때?"
웃음 반, 진담 반.
그날 밤, 나는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죽어서야 알 수 없는 작별보다,
살아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수고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3. 삶은 결국 ‘연결’
돌아보면, 내 삶은 결국 사람들과의 연결이었다.
어린 날의 벗들은 내 몸과도 같았고,
학교 운동장에서 땀 흘리던 시간,
첫사랑의 설렘을 나누던 저녁,
성인이 되어 서로 고단한 하루를 털어놓던 밤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연결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게 서글프다.
왜 우리는 떠난 뒤에야 후회하는가.
살아 있을 때 나눌 수 있는 따뜻함을
왜 그토록 미루는가...
4. 마지막 잔치
죽음은 두려움의 종착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여정의 마무리일 수 있다.
80을 넘긴 어느 좋은 날을 골라
친구와 친지들을 모아 작별의 잔치를 여는 것.
그 자리에서 함께 걸어온 시간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담아주는 일.
그것은 슬픔의 예고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준 마지막 축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만의 작은 배웅으로 떠나는 그날,
이미 그 잔치에서 모든 인사를 마쳤다면
마음은 훨씬 가벼울 것이다.
이 ‘미리 부고’는 그런 나의 바람을 담고 싶다.
세월이 흐를수록, 뜻밖의 만남이 주는 온기를 더 깊이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살아서 여는 장례식을 꿈꾼다.
그날, 서로를 안아주며
"고마웠다"라고 말하기 위해.
인생의 마지막 길목에서, 웃으며 손을 잡아줄 그대를 기다린다.
---
운곡의 살아있는 장례식 부고(訃告)
序詩
떠남이 슬픔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수많은 계절을 함께 건너왔습니다.
마지막 길목에서, 웃으며 손을 잡아줄 그대를 기다립니다.
-雲谷-
저 운곡은, 특별한 사유나 큰 병이 없는 한
80세가 넘는 어느 좋은 날,
이승의 긴 여정을 마치고
조용히 하늘길로 떠나고자 합니다.
떠나기 전,
살아생전에 먼 길 마다 않고 와주실 벗들과 친지, 지인들을 모시고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자 합니다.
부디 오셔서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의 추억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담아 가시길 바랍니다.
그날은 웃음과 눈물이 함께 어우러지는
작별의 잔치가 될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숨을 거두는 날에는
별도의 부고 없이
가족의 작은 배웅만으로 떠날 예정이오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XXX 년 ○월 ○일
운곡 올림
+++++++
미리 보내는 부고에 대하여 이웃님들의 좋은 생각과 의견 ...
기다립니다..-운곡-
운곡 김정익
긴 세월의 내공을 껴안고, 삶의 무늬를 또 다른 언어로 그려 내려고 고민합니다. 가슴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지나온 날들의 바람 소리, 잊히지 않는 얼굴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물결로 엮어 실개천에 조용히 흘려보내고 싶습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한 줄한 줄의 문장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별빛처럼 가슴깊은 곳에 내려앉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