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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Dec 12. 2018

자연의 품에서 한나절을 놀았다

나무 한 그루를 찾아서

어릴 적 아버지는 방학이면 어김없이 여동생과 나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시는 시골에 데려다 놓았다. 우리 시골은 말 그대로 진짜 시골이었다. 읍내에서도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야 겨우 당도하는 산이 깊은 시골 말이다.

어린 나는 시골에 가는 게 늘 못마땅했다. 도시에 남아 여름방학에는 친구들과 풀장에 가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겨울에는 눈썰매장에서 씽씽 눈썰매를 타고 싶었다. 일행 중에는 물론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은 곧 하늘의 뜻이었고, 거역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방학이 되면 우리는 시골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일명 ‘방학놀이’는 내가 고3 수험생이 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렇게 동생과 나는 40여일의 방학 중 절반이 넘는 시간을 시골에서 보냈다.

시골은 무료했다. 도무지 놀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 댁은 TV가 나오지 않았고, 달콤한 과자를 파는 가게를 가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어야 했다. 그곳에는 친구도 없고 놀이터도 없었다. 동생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탐구생활과 같은 방학숙제나 일기쓰기가 전부였다.

그렇게 무료함을 달래며 따분하게 지내는 가운데 우리에게도 볕들 날이 찾아 왔다. 고종사촌이나 이웃 할머니 댁 손주들이 하나둘 올 때였는데, 그때부터 우리들만의 축제가 시작됐다. 둘은 초라하지만 여럿은 용감하니까. 우리는 산으로 들로 계곡으로 쏘다니며 지치는 줄 모르고 자연의 품에 안겨 놀았다. 지천에 널린 게 풀이고 나무며 흙이고 물이었다.

여름이면 계곡에서 첨벙첨벙 물놀이를 했고, 겨울이면 하얗게 눈 쌓인 비탈진 밭이 우리의 눈썰매장이 되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끼풀을 따서 꽃반지를 수도 없이 만들었고, 나리꽃을 한 아름 따서 꽃다발을 만들어 우리들만의 시상식을 열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네잎클로버를 찾았고, 물감으로 솔방울에 알록달록 색칠도 했다. 아름드리나무가 내어주는 그늘은 한여름 뙤약볕을 피하기에 어찌나 시원했는지 모른다.  

어른이 된 나는 서울에서도 광화문 한복판에 위치한 회사를 다녔는데, 출퇴근길 서둘러 길을 걷다 오가는 사람과 부딪혀 얼굴을 붉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얼굴을 할퀴는 밀도가 늘 고단했다. 집이 위치한 경기도 외곽에 들어서면 그제야 숨통이 트이고 마음이 놓였다.

자연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사실도 새삼 위안이었다. 돈이 많은 사람도, 돈이 없는 사람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이 초록 자연이요, 꽃이고, 식물이다. 집 주변에 녹지가 풍성한 공원이 있음에, 아파트 화단에 꽃이 피는 것에, 새들의 지저귐에 고마워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란 것이다.

지난 시간의 기억 중 나쁜 기억은 모두 체에 걸려 빠지고 좋은 기억만 남는다고 하는데, 내 유년의 감성 놀이터가 되어준 시골과 그곳의 자연에서 보낸 시절은 좋은 것 이상의 감정으로 여전히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참 좋은 시절이었다. 강력한 태풍에도 끄덕 않을 나의 뿌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 시절 자연과 함께 교감하고 뒹굴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부족한 모습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딱딱한 학원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 대신 숲 놀이터에서 마음껏 보낸 시절 덕분에 더 나은 오늘의 내가 있다고 확신한다.

<안녕, 나의 장갑나무>(주니어김영사)라는 그림책에는 소년이 나무를 통해 사랑과 죽음을 경험하는 이야기가 감각 있는 그림과 함께 담겨 있다. 책에는 사람들이 외톨이라고 부르는 소년이 등장한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듬직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바로 500년을 살아온 단단한 아름드리 떡갈나무다. 소년은 떡갈나무에게 ‘베르톨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자신만의 나무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소년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베르톨트' 위에 올라가는 것이다. 소년은 초록 잎사귀가 가득 달린 베르톨트의 커다란 가지 위에서 아늑하게 누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거나 이웃을 관찰하고, 둥글게 펼쳐진 마을 풍경을 바라본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언제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사람보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또는 풀 한포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사람과는 다르게 나무는 봄이 되면 한결같이 새잎을 틔우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고, 그렇게 늘 한 자리에 서서 든든한 위로가 될 테니까. 묵묵히 수다스럽지 않게 나의 생生을 응원할 테니까.

언젠가는 창을 열면 숲이 보이는 집에 살고 싶다. 알람시계를 굳이 맞추지 않아도 짹짹 새소리에 눈을 뜨며 아침을 반갑게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온 마음을 모두 주어도 결코 등 돌리지 않을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친구 삼고 싶다.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왔다. 올봄에는 어릴 적 좋았던 시절처럼 산으로 숲으로 다니며 평생 친구해도 좋은 나무 한그루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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