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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Aug 06. 2020

취향, 그것은

100년을 사는 취향

돌이켜보면 어릴 적부터 물건에 애착이 강하고 의미부여를 잘하는 아이였다. 내 품에 들어온 것이라면 아주 작은 물건에도 이름을 붙여주었다. 가진 모든 것에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듬뿍 주면서 내가 소유한 것들은 나와 동일한 존재가 되어 갔다.  


나이답지 않은 취향도 가졌었다. 생산연도를 추측하기조차 힘든 어른들의 오래된 물건, 손때 묻은 것에 유독 마음이 가고, 나이든 사람이나 사물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또래가 붐비는 소란스러운 곳보다 조용한 공간 찾기를 즐기고, 삶의 본질 문제를 고민하며 답을 찾아 헤맸다.

    

그렇다고 유행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었다. 유행 아이템은 서둘러 섭렵하고자 노력하고, 그것들은 대부분 내 손을 거쳐 갔다. 다른 아이들처럼 TV 만화영화를 꼭 챙기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만화방을 들락거렸으며, 그 시절 유행하는 영화는 놓치지 않았다. 컬러풀한 패션이 유행할 땐 재빨리 구해 입고, 인기 있는 음악은 모조리 들었다. 등하굣길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최신가요 100곡으로 귀를 채우며 황홀했다. 이렇게 새로움을 탐닉하는 인간의 본성대로 유행 아이템에도 자주 마음을 빼앗겼지만 ‘이미 가진 것’이라고 해서 마음을 거두는 법은 없었다. 한 마디로 욕심 많은 아이였다.     


‘취향’이 주목받는 시대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만의 무언가를 갖고 싶고, 만들어가려고 한다. SNS(Social Network Services/Sites)만 봐도 알 수 있다. 자기를 표현하고 주목받고 싶은 이들이 주변에 널렸다. 내가 선택한 무엇,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공유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가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내가 선택한 것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취향은 고집과는 다르다. 취향은 곧 ‘좋아하는 것’이고 개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는 반대로 다른 사람을 파악하는 도구가 된다. 그녀가 목에 건 목걸이, 그가 선택한 넥타이에는 결국 그 사람이 담겨 있다. 한 사람이 가진 물건, 생활패턴, 생활공간 등은 한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어른이 된 내게 취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호한 어조로 대답할 수 있다. 여전히 오래된 것에 마음을 홀딱 빼앗기고, 오래 사용하는 소품과 공간을 장식하는 소품 대부분 브라운 컬러를 선택하며, 산책과 수다를 즐기고, 하루 일과 중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갖고자 한다는 것.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물건 집착증으로 확고한 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쇼핑 시간을 꽤 단축했다. 어른이 되었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취향은 견고해진 것이다.  


요즘 자주 ‘취향’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이 ‘과거 모든 날’의 나라는 전제 아래 한 살이라도 어릴 적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근사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일종의 후회 말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취향이 풍성해지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요리를 세계여행을 많이 한 친구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반열에 올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당혹감 같은 것.       


그렇지만 늦지 않았다. 차곡차곡 쌓은 습관과 경험에서 탄생한 취향이지만, 취향을 들여다보고 만들려는 노력은 곧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다시 나는, ‘100년을 사는 취향’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찰나의 유행이 난무하고, 반짝거리는 취향이 주목받는 시대지만 유행만 좇다가는 유행과 함께 취향도 사라지고 말 일이다. 획일화된 취향만을 향유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보라. 행복과 고통은 다른 세세한 사건들과 섞여 정교한 무늬를 이루고 시련도 그 무늬를 더해주는 재료가 된다. 그리하여 최후가 다가왔을 때 우리는 그 무늬의 완성을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아메리칸퀼트(How to make an american quilt)>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행복과 고통이 공평하게 깃든 인생을 만들어가고, 거기에는 취향도 포함된다. 어쩌면 삶의 완성은 곧 취향의 완성 아닐는지. 취향이라는 이름이 가진 분위기처럼 고상하고 우아하게,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으로 완성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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