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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Aug 06. 2020

사랑을 생각하다

그렇게 평생 사랑을 하자  

사랑에 빠지면 평소보다 외모에 더 신경 쓴다. 상대에게 더 멋지고 예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한 번 더 거울을 들여다보며 헤어스타일을 매만지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다. 대만영화 <청설>의 남자 주인공 티엔커는 수영장에서 만난 양양에게 첫눈에 반한다. 저 멀리 양양이 등장하자, 티엔커는 자신의 스쿠터에 달린 작은 백미러를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그 남자가 말했다. 

“거울 한 번 더 보고 나왔어.”  

  

우리가 뱉어내는 말, 즉 언어의 당도(당의 비율)를 측정할 수 있다면 그의 입에서 나온 이 문장은 여자의 속을 당도 100% 사과주스를 마신 것처럼 달달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사랑에 빠지는 찰나의 마법을 믿는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기 시작한 순간은 그때였다. 여자에게 그 말은 고백처럼 들렸다. 좋은 모습, 예쁜 모습을 보이고 싶은 건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평소 하지 않던 메이크업을 했다. 남자를 향한 마음으로 달아오른 그날 여자의 뺨은 살굿빛 볼터치까지 더해져 한층 더 수줍어 보였다. 여자의 세상은 막 연분홍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남자의 세상에는 찬란한 봄 햇살이 막 들어온 참이었다.      


여자에게 사랑은 인생에서 중요한 몇 가지 중 단연 높은 곳에 올라 있는 이슈다. 사랑은 하루의 삶이 고단할수록, 세상이 각박할수록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모진 세상일에 흔들거리고 휘청거릴 때마다 ‘내 편’이 있다는 생각과 상대에게 받는 위로와 응원은 무척이나 든든하다. 사랑을 할 때 여자는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자에게 사랑은 ‘하루의 봄’ 혹은 ‘인생의 봄’ 같은 것이다.     


막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는 예외 없이 주어지는 처음의 황홀감을 탐닉하고, 또 예외 없이 뜨거웠던 그들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스며들며 공기처럼 익숙해져갔다. 그리고 어느 날 빈번하게 다투던 그들은 으레 보통의 이별에 합의했다. 한동안 남자는 알코올에 의지하며 무너진 일상을 담담한 듯 견뎠고, 여자는 한동안 슬픔이 둥둥 떠다니는 작은 방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숱한 눈물을 쏟아냈다. 거리를 걷다 부딪치는 바람도 아프다며 주저앉아 아이처럼 엉엉 울던 날도 있다.    

   

사랑의 종착역이 ‘결혼’이라면 그들의 사랑은 실패했다. 하지만 사랑의 종착역이 결코 ‘결혼’은 아니기에 그들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의 한때를 함께했고, 둘만이 아는 세계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사랑을 속삭였으며, 함께한 시간은 각자의 인생의 순간에 선명하게 새겨 넣었다. 서로에게 ‘사람’은 떠났지만, 사랑했던 날들은 남지 않았나. 어떤 일은 명장면으로, 어떤 일은 편집하고 싶은 장면으로 남았을 테지만 시간은 그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다.

    

사랑이 떠난 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지난 사랑에서 나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상대를 진심으로 배려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추운 당신에게 나는 목이 마른 줄로만 알고 시원한 물 한잔을 건넸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내 식대로 배려하고, 내 식대로 걱정했던 건 아닐까. 당신은 내가 아닌데, 왜 난 당신을 ‘나’라고 생각하고 바꾸고 고치려 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미안한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져만 간다. 다른 누군가와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어른의 그것을 하고 싶다. 조금 더 성숙한 사랑을 하고 싶다.     


인간은 사랑 받고, 사랑하고 싶은 존재다. 기쁜 날 우리는 샘내지 않고 내 일처럼 축하해주고, 고단한 날 우리는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자. 그렇게 평생 사랑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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