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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프레도박 Jan 13. 2018

러빙 빈센트 반 고흐 #10

10화 빈센트의 임파스토 유화 기법

 10화의 배경 그림은 고흐의 밀밭 그림이다. 붓 없이 튜브째 처음부터 캔버스에 짜서 그린 듯하다. 유화 물감을 두껍게 바르고 붓이나 나이프 자국을 그대로 남기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작가가 고흐이다. 이 기법도 화가마다 약간씩 다르다.  자기 스타일에 맞게 조정하여 가장 크게 히트 친 작가가 빈센트다.  자기 스타일에 맞게 조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 빈센트는 편지에서 자신 그림의 문제점을 아래처럼 쓴다.

 “지금까지 그린 내 데생의 문제는 인체의 균형이 맞지 않다는 거야”
“램브란트와 할스의 작업을 특히 존경해, 그들의 그림은 살아 있어, 오늘날‘완성’이라고 하면 ‘끝냄’을 의미하는데, 그런 그림이 아닌 거지, <직물 조합의 간부들>과  <유대인 신부>를 비롯하여 프란스 할스의 작품에 나타난 표현을 보면 그래, 두상, 눈, 코, 입 역시 한 번의 붓 터치로 그렸고 다시 손대지 않았어.”

  빈센트는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했다. 바꿔 말하면 그는 그의 자신에 대한 인식이 높았다는 것이다. 빈센트는 위의 독백 후 대도시 브뤼셀로 가서 그림을 제대로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1880년 10월에 브뤼셀의 미술학교에 입학해 해부학과 원근법 드로잉을 학습한다.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보고 그 해결방안을 선택하고 그 방법으로 노력한다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어렵다. 자신의 개선해야 할 점을 정확히 알고 해결방안을 구하고 실천했던 사람이 빈센트다. 나의 부족한 점을 채울 새로운 콘텐츠를 스스로 확보하는 것이 빈센트의 경쟁 전략이었다.

  이렇듯 빈센트는 램브란트, 할스, 밀레, 들라크루아 등의 작품을 보면서 공부하기를 좋아했다. 동시대의 스승에게 배우는 것에 비해 훨씬 더딜지라도 빈센트는 그것을 더 가치 있다고 여겼다(류승희, 2016). 자습하는 것은 그 주제에 대해 내가 능동적으로 공부한다는 의미다.  빈센트는 수많은 습작을 데생하거나 펜으로 그렸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다. 배우거나 느낀 것을 표현하면서 붓질을 익히는 것이다. 배우기만 해서는 자기 것이 될 수 없다. 자기 것이 되려면 익혀야 한다. 익힌다는 것은 자신의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을 누구에든지 얘기할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막히지 않고 얘기하려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거울 앞에서 여러 번 반복해 얘기해 보는 것이다. 그림을 그릴 화폭을 보면서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지독한 습작 기간을 거친 사람이 바로 빈센트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만의 붓질로 색감으로 대상의 느낌을 만드는 것이다.  빈센트의 편지를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고 팔리기를 원했는지 알 수 있다. 편지에 수시로 테오에게 자기의 그림이 팔렸는지를 물어본다. 그의 편지 독백에는 그 당시에도 죽어서야 유명해지는 미술계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감정도 들어있다. 빈센트는 자신의 그림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빈센트가 선택한 그의 차별화 전략은 임파스토 기법이다. 유화 물감을 튜브째 짜거나 두껍게 칠하고 붓질을 그대로 남겨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유화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다. 이 기법은 유화를 유화답게 만드는 기법이다. 임파스토 기법으로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 바로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Rembrandt(1606~1669) 화가이다. 빈센트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많이 보고 자신 만의 임파스토 기법을 창의적으로 생각하여 적용한 것이다.

  빈센트는 1886년 1월에 벨기에 안트베르펀(Antwerpen)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회화와 드로잉 수업을 듣지만 몇 개월 만에 미술학교의 아카데믹한 원칙을 거부하여 불화를 겪고 학교를 그만두고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다. 이때 보낸 편지에는 학교에서 자신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는 파리에 가서 카미유 피사로,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 등과 친해지며 인상주의를 접한다. 사람과 세상 속에서 자신의 공부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즉 독학을 선택한 것이다. 혼자 study 하는 것이다. 흔히 그림, 사진 예술가들의 작품실을 studio라고 한다. Studio와 study, student의 라틴어 어원은‘studeo’이다. Studeo는 라틴어 동사로 “공부하다, 자기 자신을 헌신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자기 자신을 예술 작품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즉 study다. 헌신이란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고 자신의 모든 정신과 시간을 쏟아붓는 것이다. 빈센트는 그 자신의 예술 작품을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을 정했고 그 방법으로 독학을 선택한 것이다. 독학한다는 것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공부하고 있다는 의미다. 주입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를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지식은 한 번만 깨닫게 되거나 알게 되어도 죽을 때까지 저절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지식과 경험은 자신의 생존의 의미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의 학습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자연과 서민들의 고달픈 일상생활이 아름답다고 느껴서 표현해야겠다는 강렬한 의지였을까? 아니면 유명화가가 되야겠다는 것이었을까?

  그의 편지에 이에 대한 대답이 있다.

나는 화가들의 의무가 꿈꾸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반대로 여러 난관에 부딪혔을 때, ‘그림을 더 훌륭하게 끝맺고 싶다. 정성 들여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억제하며 매일의 경험과 보잘것없는 작업들이 쌓여 나중에는 저절로 원숙해지며 더 진실하고 완결된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느리고 오랜 작업이 유일한 길이며, 좋은 그림을 그리려는 온갖 야망과 경쟁심은 잘못된 길이다. … 거창한 진시회보다는 소박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그림을 그리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빈센트의 학습동기는 진실되고 완결되고 좋은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됨을 그리는 것이 자신의 그림이라고 얘기한 박수근 화가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요즘처럼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강의를 무료로 쉽게 들을 수 있는 시대는 없었다. 내가 중고생 시절에는 영어 교과서의 원어민 녹음 소리는 별도로 동네 서점이 아닌 특별한 서점에 가야 녹음테이프를 구매해야 했었다. 일부 학생은 이런 테이프가 있는지도 몰랐다. 지금은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중고 영어 교과서의 내용을 영어 원어민이 녹음한 음성을 MP3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대학 교양을 비롯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강의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학습환경은 더욱 좋아졌다. 양질의 무료 콘텐츠가 넘친다. 이제는 내가 공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문제인 시대다. 콘텐츠가 없어서 공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양질의 컨텐트가 무엇인지를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이니 뭐니 하면서 40년째 비판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모든 사람에게 강제로 똑같은 목적을 갖는 교육을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 학습하게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잡으면 된다.  강의는 어디까지나 learn이다. Study가 아니다. 스스로 학습한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익히고 사색하고 기존의 지식과 새로운 지식을 서로 연결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서점에 가면 학습에 관한 책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몇 년 전부터 화두가 되는 유태인의 하브루타라는 학습법이 있다. 조용히 책상에 않아서 문제를 풀거나 책을 읽는 학습이 아니라 둘이서 짝이 되어서 서로 번갈아가며 질문하고 대답하는 학습방법이다. 이 방법은 모든 지식이 내 머리에서 출력될 때만 진정으로 자기 것이 된다는 뇌학습 원칙에 따른 것이다. 양질의 콘텐츠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오프라인 필요한 이유는 바로 스스로 학습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학습한다는 것은 스스로 사색한다는 것이다. 사색을 통해서 공부한 지식이나 논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도 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노트에 정리하기도 한다. 이런 출력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의 지식이 되는 것이다. 빈센트도 이 방법을 썼다. 빈센트는 1888년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면서 고갱과 잠깐 같이 살게 된다. 이때 고갱과 그림과 예술에 관해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토론하게 된다. 그림은 왜 그렇게 그려야 하는가? 물론 이 부작용으로 고갱은 빈센트를 떠나고 빈센트는 귓불을 스스로 자르는 자해를 하고 동네 주민의 신고로 정신병원으로 입원한다.


  27살에 전업으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독학으로 자신만의 그림 철학을 바탕으로 실천한 사람이 빈센트다. 빈센트는 20대 후반에 그림을 그려 다른 사람에게 위안을 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미술에 관해 독학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그림에서 데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그 당시 유명했던 데생 관련 책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술학교에도 잠깐 갔지만 자기 스스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혼자 학습하다 보니 혼자 많은 사색을 하고 자기 나름의 그림 철학이 생기고 창의력이 생긴 것이다. 그가 만약에 그 당시의 전통적인 미술 교육을 무작정 자신이 목적에 상관없이 받았다면 그의 그림은 현재 명화의 반열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독학한다는 것은 내 순수한 나의 욕구에 의존하여 스스로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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