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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프레도박 Jan 13. 2018

러빙 빈센트 반 고흐 #11

11화. 그림은 도끼다.

  그림도 도끼다. 왜냐하면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기존의 관념을 도끼로 깨뜨리며 새로운 미학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림의 역사는 항상 본질적인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역사이다. 빈센트의 그림을 포함하여 1세기 전의 그림은 지금은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그림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일반 대중에게는 생소하고 낯선 그림이었다. 

   그림을 그릴 때에 필요한 도끼는 무엇일까? 그게 바로 데생 실력이다.  정교화란 실제적인 모습을 그대로 정밀하게 똑같이 그리는 것이다. 정교화는 사물이나 인물의 크기를 그릴 때에 원근법을 충실히 따른다. 멀리 있는 것일수록 작게 그리고 소실점을 통해 한 곳으로 사물과 인물이 배치되도록 조정한다. 정교화는 정교화만의 아름다움과 미학이 있다. 빈센트는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기존의 회화풍에 반기를 들었다. 그렇다고 빈센트가 정교화의 기본이라 할 수도 있는 데생 실력이 형편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데생 실력을 죽기 전까지 연마했다고 볼 수 있다. 대상을 더 자세히 관찰하게 만드는 데생 연습을 게을리했다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데생 연습이란 사물을 자세히 보고 계속 그리는 것이다. 빈센트는 데생으로 자기 주의의 사물과 사람을 그리는 연습을 했다. 빈센트는 자살하기 1년여 전에도 밀레의 그림을 습작했다. 그리고 이 데생 실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색채 기법을 발전시킨다. 


  남과 다른 그림을 그리기 위한 기본 실력은 우선 그림 그릴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색채 없이 표현하는 데생 실력에 있다. 흔히 사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미술에 새로운 경향이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인상주의의 탄생 배경은 사진 기술이라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어찌 보면 그것을 결론의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만약에 사진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예술가들은 기존의 그림과 다른 형태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술의 본질 중의 하나가 바로 남과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항상 자기의 작품으로 남과 다른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명화는 기존의 틀을 깨고 부피감, 공간, 형태를 새로운 미학으로 만드는 것이다.

  빈센트 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해바라기이다. 이 해바라기 그림이 빈센트 만의 미학으로 탄생한 그림이다. 왜냐하면 빈센트는 그의 해바라기 그림을 가장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이것은 빈센트가 그린 해바라기라고 느껴지게 한다. 즉 자신만의 화면을 가득 채운 부피감, 화면을 가득 채운 공간, 해바라기 꽃의 다양한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 빈센트는 편지에 아래처럼 말한다. “해바라기에서 나는 매일 해가 들면 아침부터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어. 꽃은 빨리 시들기 때문에 단번에 작업 전부를 하는 것이 뭣보다 중요해”빈센트는 1888년 8월 20일 월요일에 커다란 해바라기 네 점의 연작을 시작해 그 주 주말에 끝마친다. 해바라기가 만개했던 시기였다(베이릴 마틴, 2016). 해바라기를 그릴 당시에는 론 계곡에서 강렬한 바람이 불어와 실외작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실내에서 그렸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의 미학적 완성을 위해 빈센트는 꽃이 시들기 전에 그림을 그리려는 전략을 선택한다. 

  빈센트는 남과 다른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훗날 명화가 된 것이다. 그의 그림은 현재 그가 습작했던 밀레의 작품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었다. 그가 그 당시 유행하던 화풍을 따라 하기만 했다면 그의 그림과 이름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남과 다른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 사람만의 인간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1874년에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의 파리 화가들이 의기투합하여 새로운 채색 기법을 전시한다. 이 기법은 물감을 짧고 두껍게 바르며 세세한 세부묘사 무시하기, 물감을 섞어서 칠하지 않고 색별로 덧칠함으로써 보는 사람의 시각 속에서 섞여 보이게 하기,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그리기, 작업실이 아닌 야외에 나가 그리기, 검은색과 회색을 사용하지 않고 어두운 색조는 보색으로 연출하기, 물감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른 색깔의 물감을 덧칠하여 의도적으로 번지게 하기, 어슴푸레한 석양, 번쩍이는 햇빛, 반사된 빛 같은 빛의 상태 중시하기, 그림자를 하늘빛이 반사된 푸른빛으로 표현하기 등이다(데즈먼드 모리스, 2014). 빈센트를 후기 인상주의로 인식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상주의의 채색기법과 동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붓질을 훨씬 더 눈에 띄고 강렬하게 표현했다. … 나중엔 캔버스에 물감을 난폭하다 싶게 칠하는 정도에까지 이른다. 반 고흐의 작품은 물체를 더 강렬하고 눈에 띄게 보이도록 종종 어두운 윤곽을 더했던 점에서도,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과 차이를 보였다.”(데즈먼드 모리스, 2014). 빈센트의 그림이 어느 누구의 그림보다도 강렬하다는 것은 굳이 미술적 지식이 없어도 느낄 수 있다. 어두운 윤곽을 더한 것은 그 당시 인기를 끌었던 일본 화풍을 영향받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러 기법을 융합하여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든 것이다.

  1606년의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의 대사를 통해 예술을 “보잘것없는 것도 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데즈먼드 모리스, 2014). 해바라기는 흔히 보는 들판의 1년 살이 작물이다. 뜨거운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꽃을 피던 해바라기의 느낌을 빈센트답게 표현한 것이다. 빈센트는 너무 자주 봐서 별 감흥이 없던 꽃을 해바라기의 상징인 노란색을 통하여 가장 귀한 해바라기로 만든 것이다. 남과 똑같다면 보잘것없는 것이다. 남과 똑같이 해바라기를 그렸다면 보잘것없는 그림이 되었을 것이다. 빈센트는 그 자신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남과의 다른 점을 추구했다.

  인간은 본능이 아닌 아이디어로 살아남은 종족이다. 창조적인 산업이 융성하고, 창조적인 산업이 융성하고 창조적인 인력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지 않아야 모든 인간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나아가, 그들을 통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돈 탭스콧 외 1명, 2017). 아이디어로 살아남았다는 것은 빅 히스토리에 자주 언급되는 테마이다. 

  빅 히스토리란 137억 년의 역사를 인문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는 새로운 틀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며 자신의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해왔다. 최근 인류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약 23종의 사람이라는 종족이 있었고 이중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이유는 다른 인간 종족보다 놀고 배우는 유년시기가 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먼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 중에 약 10세 정도로 추정되는 유골의 치아 뼈를 분석해 보니 네안데르탈인은 유년시절이 매우 짧았다는 것이다. 유골의 치아 뼈의 생성시기를 분석하면 유년시절의 기간을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직접 사냥 등의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유년시절이 길었다. 이 시절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는 사냥과 기후에 대한 지식을 전수할 수가 있었고 이 다른 종족과의 다른 점 때문에 빙하시대에도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이다. 남들과의 다른 점이 없거나 남이 제공하지 못하는 특별한 서비스가 없다면 그냥 남과 똑같은 용역비를 받는 것 이상으로 받을 수가 없다.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기술과 남들이 확보하기 어려운 자신 제품에 대한 고객 리스트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하게 남과 다른 기술을 가져야만 생각하면 안 된다. 빅 히스토리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더라도 좀 더 크게 다양하게 기술의 이해도를 넓혀야 한다. 내가 갖고 있는 기술과 지식을 새롭게 정의해도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창출할 수 있다. 그 사례는 매우 많지만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생각하면 된다. 아이폰이 처음 나오기 전에도 그와 유사한 개념의 스마트폰이 있었지만 그 수요가 매우 적었다. 국내에서 2003년에도 리눅스 기반의 PDA폰이 출시되어 일부 마니아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계속 가지는 못했다. 이때에도 삼성에서는 윈도 CE 기반의 핸드폰을 만들어 전철역 근처에서 가두판매도 했었다. 이 당시 가격이 한 100만 원가량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히려 한국이 미국보다 더 선진적으로 스마트폰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이 1등이 못된 이유는 무엇일까? PDA폰을 개발하면서 남과 달라야 한다는 점을 본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PDA폰의 핵심은 응용 소프트웨어이다. 

비즈니스용으로 쓰려면 명함관리, 영업관리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응용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당시에는 이런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도 유통하는 하는 힘이 약했다. 유통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의 기능도 거의 없었고 따라서 기능에 비해 스마트 폰 기기도 비쌌다. 이 당시 PDA폰이 히트시키기 위해서는 응용소프트웨어의 개발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PDA폰에서 음악을 듣는다면 그 음질이 좋아야 하는데 2003년 당시에 음질이 음악 수준이 아니라 통화 수준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었다. 사진의 화질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에서는 피처폰만 판매해도 수익이 나는 시장이었기 때문에 국내 기업은 혁신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의 애플은 소리의 음질과 사진의 화질을 경쟁자보다 높이고 가장 중요한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판매된 제품 수익의 70%을 갖는 유통 플랫폼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게 그 당시 소프트웨어 업계의 기존과 다른 혁신이었다. 왜 한국은 IT신체품에 광적인 얼리 어댑터들이 있었는데도 전 세계적으로 히트 치는 제품을 만들지 못한 것일까? 소프트웨어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경영자들과 정부의 정책 기안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제대로 만든 소프트웨어 제품을 후한 값을 주고 구매하거나 회사를 인수 합병하고 새로운 비즈니스에 투자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와 관련한 M&A가 쉽고 투자가 용이하고 기업에 이익이 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만들었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서 회담을 하면서 그들에게 유망한 벤처기업을 아주 비싼 값에 사들여 달라고 부탁한다. 비싼 값에 사들여야 전 세계의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회사나 인재들이 미국으로 몰려올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술의 본질은 우리가 보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를 도끼로 벽을 깨서 열어주는 것이다. 도끼는 날카로워야 한다. 그래야 나무를 찍어서 쓰러트린다. 날카롭지 않다면 도끼의 역할을 못한다. 사람마다 누구나 도끼를 갖고 있다. 그 도끼를 찾지 못한 사람도 있고, 그 도끼를 강하게 담금질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도끼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도끼란 사람마다 갖고 있는 개성이거나 특정 분야의 경험과 실력을 의미한다. 동물이 갖지 못하는 인간만의 아이디어가 바로 인간의 도끼이다.


그림출처: 반고흐뮤지엄, Pollard Birches Vincent van Gogh, 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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