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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프레도박 Jan 30. 2018

러빙 빈센트 반 고흐 #31

31화 고흐는 자기를 혁신한 사람이다.

  고흐는 자기를 혁신한 사람이다. 테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그것을 항상 고마워하고 그래서 더욱더 그림 그리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계속 성장하고 진화했다. 어두운 톤의 그림에서 프랑스 남부 아를에 머물면서 그의 그림은 혁신적으로 다른 색채로 변한다. 이전의 갖고 있던 좋지 않던 색채감을 가죽이 무두질을 하듯이 다 걷어내 버린다. 


  혁신의 혁이라는 한자는 가죽을 의미한다. 가죽을 만들려면 우선 가죽을 사체로부터 분리한 후 건조한다. 건조 과정을 통해 가죽에 붙어있는 동물성 지방층을 빼는 것이다. 그리고 무두질을 한다. 무두질은 상온에서도 썩지 않는 피혁을 만드는 과정 전부를 말한다. 단백질이 있어서 그대로 두면 썩는 동물의 피부에서 썩는 성분을 없애버리는 것이 무두질이다. 말 그대로 필요한 성분만 남기고 썩는 성분을 제거하는 것이다. 가죽의 품질을 좋게 하려면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친화적인 방법을 쓴다. 가죽혁(革) 이란 한자는 자신의 여러 가지 관념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여 깊이 오랫동안 생각하여 자신의 색채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가죽도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자연적 무두질을 통해야 그 가죽의 색깔과 품질이 최고로 된다. 인위적으로 빠른 방법으로 무두질된 가죽은 아주 흔한 가죽이 된다. 스스로의 긴 자기성찰의 시간을 보내지 않은 혁신은 오래가지도 못하고 그 모양도 아름답지 못하다. 개혁과 혁신은 비슷하면서 다른 말이다. 개혁은 기존의 것을 새로 형태로 바꾸는 정치적 의미가 강하고 혁신은 창조적으로 바꾸어 새로 만드는 의미가 강하다. 개혁은 혁신보다 의미가 더 넓다. 자신을 혁신한다는 것은 기존의 생각을 단순히 바꾸는 게 아니다. 자기 성찰을 통해 아예 새로 처음부터 새로 생각하여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것을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이 혁신이다.


  혁신하려면 대담해야 한다. 대담하다는 것은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 담은 말 그대로 간을 의미한다. 대담하다는 것은 간이 크다는 것이다. 대담한 것은 겁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대담하지 않은 혁신은 이미 혁신이 아니다. 개선을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위 그림은‘천국의 문’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이 그림을 읽기 위해서는 빈세트가 읽었던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이해해야 한다. 천로역정은 하늘로 가는 여행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존 버니언이 썼으며 내용은 주인공인 크리스천이 절망의 수렁에 빠지는 등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천국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빈센트는 그의 편지를 보면 이 책을 매우 흥미 있게 읽었다(박홍규, 독학자, 반 고흐가 사랑한 책, 2014).

 고흐는 위 그림을 1882년에 석판화로 찍었다. 그리고 이 것을 1890년에 유화로 다시 그렸다. 혁신을 통해 새로운 그림의 세계로 가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아무도 그 길이 맞는다고 응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작품은 가죽의 고통의 무두질처럼 그림에서 이전에 갖고 있던 썩는 성분은 없애고 오래갈 성분만 남긴 작품이다.  고흐는 지독한 자기 성찰을 통해 끊임없이 아름다운 진리를 추구했다. 이 그림은 빈센트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1890년에 10여 년 동안 그림을 그렸지만 성에 찰 만큼 그림이 발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이다. 과연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 내가 해왔던 10년 동안의 그림 그리던 작업이 헛된 것은 아닐까 하는 고뇌도 느껴진다. 그래서 1890년 요양원에 있으면서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테오가 그의 어머니에 쓴 편지에 따르면 고흐는 1886년부터 동료 작가들과 작품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1886년에는 한 화상이 그의 그림을 위탁 판매하겠다고 4점을 가져갔다. 1886년은 인상주의자들의 8차 전시회가 열리는 미술사의 전환점이 된 해였다. 이때 조르주 쇠라의 걸작 여러 점이 처음으로 전시된다. 빈센트는 이때 파리에 머물면서 다채로운 색의 조합을 실험했다. 그는 그의 풍경화에서 인상주의, 점묘 파적 수법을 각각 시도하거나 혼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섞이지 않은 색의 반점을 사용하는 점묘파 수법을 극히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그만의 개성적인 화법을 완성한다(반 고흐 빈센트, 2011).  


  고흐는 그림을 팔지는 못했지만 1886년부터 그의 동료들 화가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리에서 그는 스스로의 그림을 변화시키고 개혁했다. 빈센트는 그 당시 새로운 화풍으로 떠오르던 인상주의를 체험하고 타인의 좋은 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 그리는 방법에 적용하면서 화풍에 변화를 준 것이다.

  고흐는 밀레의 그림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직접 노동을 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겼다. 고흐는 아래 편지에서 자연과 교류한다는 의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따라 하는 것을 말한다고 고백한다.

1883년 10월 31일
“우리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손을 써서 일을 하고 자연과 교류함으로써 자신을 개혁하는 것이다. 그 밖의 사람들에게 성실하기 위해, 또 자신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의무라고 믿는다. 우리의 목표는‘신과 함께 걷기’이다. 이는 대도시에서 행해지는 삶의 방식과는 정 반대다.”
1885년 4월 2일
“행복이든 삶의 기쁨이든 간에 참되게 살고자 한다면 인간은 일을 하고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한다.”
1885년 4월 30일
“농민 생활을 그리는 일은 참으로 어렵구나. 그러나 예술과 인생을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들한테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이끄는 그림을 그리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스스로를 비난할 수밖에 없다. 밀레, 드 그루를 포함하여 다른 많은 사람들이‘더럽다. 조잡하다. 추악하다. 악취가 난다.’와 같은 빈정거림에 귀 기울이지 않는 마음가짐을 몸소 보였는데, 내가 그런 악평에 흔들린다면 치욕스러운 일이지. 아니, 농민을 그리려면 화가 자신이 농부인 것처럼 그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그려야 한다. 당장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그려야 한다. 나는 너무나도 자주 농민은 하나의 독립된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많은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 세계는 문명화된 세계보다 더욱 뛰어나다고 본다. 물론 모든 점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는 정체되고 금리는 제로 금리인 시대에 왔다. 기업은 더욱 치열해진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기업은 어느 때보다도 더욱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기업에서 시킨 일만 잘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기업도 무한 경쟁시대에 들어서면서 더욱더 혁신과 프로세스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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