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이예지 양
네가 짜장라면이 먹고 싶다기에 찬장을 뒤졌더니 한 개뿐이었다. 같은 수를 구입했던 라면은 여러 개 남아 있어 특정 기간 우리 집 소비자 선호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식사 준비에 들이는 품을 줄이고자 제안했다.
"그냥 라면은 어때?"
"짜장라면이 좋은데."
그럴 줄 알았다. 서둘러 짜장라면을 조리해 내놓고 냄비에 다시 물을 받았다. 끓는 물에 라면수프를 풀자 짜장라면과는 다른 매력에 끌린 협상가가 접촉을 시도했다.
"아빠, 우리 나눠 먹을까?"
"왜?"
"아빠도 짜장라면 좋아하잖아."
내가 아니라 네가 좋아서 한다는 것을 앞세우는 게 협상에서 기본이다. 너무 쉽게 설득되더구나. 면을 풀고 함께 넣은 달걀도 네 취향에 맞춰 완전히 익을 때까지 끓였다. 아빠는 두루미에게 넓은 접시를 내놓는 여우가 아니란다. 그런데 너는 거래가 성립되자마자 이미 젓가락질을 시작했더라. 게다가 까만 짜장라면과 대비되는 하얀 그릇 바닥이 얼핏 보이면서 아빠는 조급해졌다. 가스불을 다급하게 끄면서 계약 내용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예지, 같이 나눠 먹기로 했잖아."
"응, 따로 덜어낼 그릇이 없어서…."
그럴듯한 해명과 달리 슬그머니 밀어내는 그릇 속은 어쩐지 허술했다. 야무진 네 눈길은 이미 아빠 그릇 쪽으로 향하는구나. 이거 협상을 유지해, 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