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이예지 양
"엄마와 아빠 중에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알아?"
학교 갈 준비를 하던 네가 느닷없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주저 없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아빠라면 뜸을 들이다가 '글쎄'라고 답했을 것이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 얄미우면서도 부러웠다. 그래서 네 대답에 고개를 돌려 주먹을 쥐며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학교에서 사회성을 배운다는 게 이런 거 아니겠니. 제도권 교육을 한층 신뢰하게 됐다. 잠시 감회에 젖는 동안 제법 까다로운 출제자 눈길이 아빠에게 향하는 것을 놓쳤다.
"엄마·아빠가 이혼하면 나는 누구를 따라가?"
평범한 아빠라면 '그럴 일 없다'거나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느냐'며 답을 피할 테다. 질문을 피하거나 되물으면 앞으로 질문하지 않을 이유가 생긴다는 것을 아는 게 비범한 아빠가 갖춰야 할 소양이다. 순식간에 네가 엄마와 살 때, 아빠와 살 때를 가상으로 반복해서 돌려 결론에 닿았다.
"아빠를 따라오면 좋겠지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게 훨씬 많기 때문에 둘 중 한 명이라면 엄마를 따라가는 게 좋겠네."
합리적이며 진심이어서 더 흔쾌하지 않은 답이었다. 네 짧은 침묵이 '그런 상황에서는 엄마'라고 학습하는 듯했다. 너는 신발을 신고 돌아서며 담담하게 선언했다.
"아직 결정하지 못했으니까 이혼 안 했으면 좋겠어."
당신들 사정은 모르겠고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4주 뒤에 보자거나 상대 입장이 돼서 어쩌고저쩌고보다 훨씬 명쾌했다. 늘 참고 견디며 행복을 탐구해야 할 이유가 그렇게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