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없이 사과하는 방법

여덟 살 이예지 양

by 이승환

TV 보면서 뒹굴거린다고 엄마와 약속한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약속을 어겨놓고 사과도 하지 않고 버텼다면서. 한편으로 대견했지만 대놓고 응원할 수는 없었다. 어쩐지 살벌한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웠는지 마지못해 너는 엄마에게 먼저 다가왔다더구나.


"엄마는 좋아하는 사람을 섭섭하게 했을 때 어떻게 해?"

"좋아하는 사람이면 미안하다 사과하고 화해할 거야. 그렇지 않은 사람이면 그냥 안 보고 살고."


엄마는 사과를 포함한 화해 또는 외면만 남겨둔 채 너를 몰아붙였더구나. 외면을 결코 선택할 수 없는 네 처지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답은 하나뿐인 문제였다. 완벽한 설계 앞에 내던져진 네 답이 궁금했다.


"나도 그래."


엄마는 순간 뭔 소리인가 싶어 멍했다더라. 사과 없이 사과하는 기발한 방법에 아주 속이 후련했다. 엄마가 낯설어하는 그 방식이 아빠는 아주 익숙하다. 엄마도 사과 없이 사과하는 기술을 꽤 다양하게 구사하는데 그 방법을 모두 모아 한마디로… '자존심'이라고 하자. 이제 자기 방식으로 겨우 한 번 당한 엄마를 보고 몰래 너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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