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이예지 양
친구 잘못을 다른 친구가 선생님께 이른 게 너희들 사이에서 문제가 됐나 보구나. 친구 잘못도 잘못이지만 고자질도 잘못 같은 상황을 말끔하게 정리하기 곤란했겠다. 오죽하면 아빠에게 사연을 전했겠니.
"예지 생각에 고자질이 나빠?"
네 생각을 되물은 것은 시간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적당한 사례와 비교까지는 얼추 정리했는데 결론이 어디로 튈지 애매했다. 그래도 결론이 엇나가는 게 얘기가 끊기는 것보다 나을 때가 많다.
"예지 잘못을 아빠가 나중에 엄마에게 얘기하는 것은 어때?"
"나빠."
물론 좋다고 답할 이유는 전혀 없다. 궁금한 것은 나쁘다는 답보다 단호한 태도였다. 그 확신은 어디서 비롯했을까.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경찰에게 얘기하는 것은?"
"괜찮지."
그 차이가 뭐냐고 묻기는 했지만 그럴싸한 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개별 문제가 그다지 어렵지 않더라도 묶어서 결론에 닿는 과정은 대체로 어려우니까. 최소한 아홉 살 아이에게 바랄 능력은 아니었다.
"아빠가 처리할 수 있으면 고자질할 필요 없잖아. 아빠 힘으로 안 되면 신고하는 게 맞고."
그러니까 이제 질문을 던지고 나서 답도 기대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