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이예지 양
"아빠, 오늘 혹시 우리 외식해?"
주말 점심때를 앞둔 너는 엄마 대사를 고스란히 가로챘다. 워낙 자기표현이 조심스러운 우리 집 주연이 먼저 말을 거니 일단 반가웠다. 게다가 좀처럼 먹는 것으로 욕구를 드러내지 않는 아이라서 이어질 대사도 궁금했다. 느닷없이 너에게 대사를 빼앗긴 조연도 전혀 조급해 보이지 않았다.
"가고 싶은 데 있어?"
"그렇지는 않은데 전에 엄마와 갔던 고기 구워 먹는 집 있잖아. 식탁 가운데에 불 집어넣고, 백김치 반찬도 나오고, 약간 양념 맛 나는 고기도 구웠고, 고기 먹고 나서…."
그 생생한 묘사를 듣는 단역은 애써 모른 척 연기하느라 무척 힘들었다. 조연은 네 뒤에서 눈으로만 웃더라. 마지막으로 주연이 남긴 대사가 심금을 울렸다.
"만약 안 되면 다른 데 가도 괜찮아."
도무지 다른 곳을 떠올릴 수 없었다. 고기 먹고 나서 나온 냉면 맛이 괜찮았던 것도 분명히 기억하겠지. 평소 맛집을 쫓아다니는 사람보다 맛을 아는 사람이 됐으면 했는데 싹수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