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P141
김약국의 딸들을 지나쳐 도착한 파시,
김약국의 딸들이 일제강점기까지 다루고 있다면,
파시는 한국전쟁 직후를 다루고 있다.
김약국의 딸들과 닮은 점, 다른 점을 비교하며 읽어도 재미있다.
(박경리, 마로니에북스, 2013)
1964년 처음 출간되었다. 한국전쟁 직후의 경상남도 통영을 배경으로 한다. 박경리 작가의 고향이 통영이라 소설 배경에도 자주 등장하는 듯하다. 제목이 파시즘 사상을 뜻하는 건 아니다. 바다 위에서 어획물의 매매 이루어진 어시장의 한 형태의 파시이다.
파시는 총 582페이지로 김약국의 딸들보다 방대한 분량의 장편소설이다. 보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중단편, 장편소설이 초석이 되어 대하소설 토지가 탄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어째 호칭이 직업이다. 점잖은 성격과 비관적인 관조, 보건계열에 종사한다는 점이 흡사하다. 남해바다를 끼고 있어 어시장, 어사업을 하는 인물들이 대조적으로 등장한다. 직업의 귀천을 비판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박의사와 아들 응주가 배에서 내리자, 짐을 달라는 지게꾼을 박의사가 밀친다. 지게꾼은 이렇게 말한다.
"재수 더럽다. 우리네 짐꾼은 개돼지가, 응? 짐 없으믄 그만이지 와 사람을 떠미노! 넥타이만 매고 댕기는 놈만 제일 강산이가!"
(파시 中 P130)
수옥이는 한국전쟁 직후 피란을 온다. 전쟁 전에는 여학교를 다니고 집에서 과수원을 할 정도로 유복했지만 전쟁 이후 고초를 겪는다. 부산에서 지내다 안타까운 사정에 조만섭 씨가 통영으로 데려온다. 수려한 외모로 인기는 많으나, 존중받지 못하는 인기는 인생을 고달프게 만든다. 수옥이에게 이미 결혼한 성재와 서영래가 추파를 던진다. 김약국의 딸들의 용란도 빼어난 인물이었으나, 말미엔 충격적인 사건에 겪고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한다. 거침없는 성격의 용란이에 비해 수옥이는 말수도 적고 두려움도 많다.
40대 서영래는 조만섭 씨와 조만섭 씨 처 서울댁에게 물건 달라듯, 20대 수옥이를 달라고 조른다. 서영래는 처가 있다. 처가 아기를 못 낳아, 아이가 갖다 싶다는 핑계로 다른 집에서 수옥이와 살림을 차리겠다고 한다. 이 모든 생각을 수옥이는 알지도 못하고, 그러니 동의도 없다. 조만섭 씨가 수옥이를 탐내는 서영래를 거절하는데, 서영래가 끈질기다. 김약국의 딸들의 서영감은 며느리 용옥이에게 성폭행을 시도한다. 바닷속으로 사라진 용옥과 함께 범죄사실은 잠긴다.
조만섭 씨는 서영래랑 비슷한 또래임에도 조만섭만 올려주는 호칭을 붙인다. 또래인 서영래는 그냥 서영래다. 둘이 만나면 예의를 안 차리는 꼬맹이 대하듯 농담을 주고받는다. 나이에 관한 농담과 호칭이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에 더해 조만섭 씨의 딸 명화도 주목할 만하다. 풍족한 집안에서 여학교를 다니는 지적인 인물이나, 정신질환에 걸려 죽음을 맞았다는 친어머니의 그림자를 두려워한다. 개인적으로 조만섭 씨 집안에서 일하는 순이가 제일 재밌다. 비극적인 김약국의 딸들과 다른 결말을 희망하며 파시를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