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p271
비하인드가 있었다. 박경리 작가는 파시를 집필하며 주관적 묘사를 완전히 배제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쫓아간 새로운 수법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객관적 눈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수옥의 삶이다.
수옥은 거래당한다. 조만섭 씨의 처, 서울댁은 수옥을 속이고, 서영래와 거래한다. 노파에게 물건을 받으라는 심부름을 간 집에서 서영래가 나온다. 서영래는 존엄성을 짓밟고 수옥을 첩으로 만든다.
수옥은 남편이라 주장하는 서영래를 무서워한다. 멀리서 바라보는 불행이 덤덤해서 더 가까웠다.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피난민으로 고초를 겪던 수옥을 통영으로 데려온 조만섭 씨를 '아버지'라 부른다. 조만섭 씨 집이 부산으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듣자, 따라가고 싶다고 한다. 서영래는 수옥이를 억지로 가지고도 자신을 피하자, 수옥을 채근하고 트집을 잡는다. 화도 냈다가 밤만 되면 따뜻하게 굴었다가, 아침이 되면 수옥이를 깨우고 버린다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바다에 배가 있어서, 그 배를 타고 우리 집에 갈 수 있다면, 갈 수만 있다면, 아아, 얼마나 좋을까.'
(박경리, 파시, 마로니에북스, 2013)
수옥이는 밤마다 우물에 물을 길으러 나가서 운다. 응주의 친구인 학수는 수옥이를 보고 반한다.
또 학자의 대사가 거침없다. 학자는 학수의 여동생으로, 원체 잘 살던 집이었으나 가세가 기운다. 학자는 조만섭 씨의 딸 명화와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로, 명화 남자 친구인 응주와도 인연이 있다. 응주네 아버지, 박의사가 학자네 집에 왕진 의사로 드나들기도 했다. 학자는 박의사네 병원 간호원으로 취직시켜달라고 박의사의 집에 찾아온다. 박의사가 에둘러 거절하고, 학자를 차갑게 대한다. 학자는 화가 나서 박의사에게 한소리하고 명화의 집으로 간다. 둘은 이불보에 누워 운다.
천장에 불그레한 전등불 그늘이 달무리처럼 걸려 있는데 감미롭기조차 한 것 같은 분위기가, 낮은 흐느낌이 물결처럼 휩쓸고 그 속에 두 여자의 마음이 일렁이는 것 같다. 서로의 슬픔이 합쳐졌다가 갈라지고 다시 합쳐지면서, 기묘한 광경이다.
(박경리, 파시, 마로니에북스, 2013)
남북전쟁 이후의 혼란한 분위기, 저마다 다른 개인의 서사에 공통적인 우울감이 끼어있다. 이야기란 '불행'이 없을 수는 없을까. 필연의 아픔을 간직한 시대극에서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사람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존엄하게 존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온 것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경우 마지막까지 남겨두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며, 생명에 대한 외경
(박경리,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현대문학,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