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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파 Sep 07. 2018

여덟 번째 글_육아휴직하면 정말 1년 쉬는데.ㅠㅠ

@Atlanta airport, USA_고고파. 이민국 수용소에 갇히다.

미국에서는 한국에 ‘육아휴직제도’가 있고 한 아이당 1년의 휴가를 준다는 것이 믿기지 않나 봅니다. 혹시나 우리 가족과 같은 일이 발생할 때 우리가 겪은 일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으로 가족 모두 이민국 수용소에 갇히는 경험을 했다. 갇혀 있던 시간도 2시간 남짓이었고, 규모도 10평밖에 안되어 ‘수용소’라는 표현이 과장되게 들리겠지만, 해외에서 처음 맞닥뜨린 이민국 수용소는 우리 가족을 위축시키기에는 모자람 없었다.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 평소처럼 이민국 심사를 받았다. 귀국 편 비행기 표까지 준비되어 있어, 나름 입국심사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좀 있는 이민국 직원은 현금이 별로 없고, 취학 연령대 두 아이를 데리고 멕시코에서 건너온 우리 가족이 의심스러운지 꼬리에 꼬리를 이어 질문을 했다.


심사관: 미국에 왜 왔어요?

나: 휴가 보내러 왔어요.

심사관: 얼마나 보낼 건데요.

나: 두 달 정도요.

심사관: 전에 온 적 있어요?

나: 3~4번. 출장으로 왔어요.

심사관: 무슨 일 하시는데요.

나: 무역업에 종사해요.

심사관: 미국에서는 아이들 학교 어떻게 할 건가요?

나: 학교 안 보내고 우리가 가르칠 예정이에요.

심사관: 현금은 얼마나 갖고 있나요?

나: 2천 불 정도요.

심사관: 귀국 편 비행기표는 있나요?

나: 네. 여기 있어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 말했고, 갖고 있었던 귀국 편 비행기표도 보여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 눈에는 우리가 불법체류를 목적으로 온 것처럼 보였나 보다. 곧이어 우리 여권을 노란 딱지가 붙은 파일에 넣어 그들 상관에게 인계했다. 또한 수화물 찾는 곳에 들려 가방도 전부 찾아 다시 수용소 같은 밀폐된 공간에 20여 명 정도 되는 중남미 사람들과 함께 우리를 가뒀다.


추후에 보니, 딱지가 여러 가지였는데, 노란색의 경우, 불법체류 의심자를 의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직원에게 심문받은 후에 안 사실이고, 그전까지, 콜롬비아 및 멕시코를 거치고 와서, 짐 검사를 보다 세밀하게 받나 보다 여겼다. 


하지만, 석방(?)되는 사람들을 보니, 몇몇의 경우, 짐 검사 없이 나간다. 드디어 우리 차례. 어. 그런데,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심사받으러 나간다. 다행히 환승시간이 5시간이라서, 여유는 있었지만, 2시간 동안 가만히 대기만 하고 있으니, 환승하는 비행기를 놓칠까 약간씩 조급해진다. 그래서, 우리를 이 곳까지 데려온 직원에게 ‘다음 환승해야 하는 비행기 시간이 다가오는데, 빨리 심사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심사하는 직원이 퉁명스럽게 왜 허락 없이 다른 직원과 말을 하냐며 호통을 친다. 그러면서 무슨 말을 했냐고 다그친다. 사정을 말하니, 만일 심사로 인해 비행기를 놓치면 항공사에서 무료로 다음 비행기를 마련해 줄 테니, 부를 때까지 자리에서 대기하란다. 잔뜩 주눅 든 나는 다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우두커니 아내와 함께 대기했다. 아내는 우리 심사 순서가 늦춰지는 게 통역을 기다려서 라고 추측했는데, 아내가 맞았다. 


수용소에 들어온 지 2시간 후 심사관이 아내를 찾았다. 나도 함께 일어나니, 아내만 오란다. 창문에 불투명한 코팅을 해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아내가 손짓으로 심사관과 중간에 통역으로 보이는 이와 함께 계속해서 이야기를 한다. 10분 가까이 이야기했나. 아내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들어왔다. 곧이어 심사관이 나를 호출했다. 가보니, 50대 후반의 여자 통역이 와 있었다. 직원은 처음 만났던 심사관과 같은 질문을 했다. 


심사관: 미국에 왜 왔어요?

나: 휴가라서 누나 보러 왔어요.

심사관: 주소랑 연락처 있어요?

나: 있어요. 

심사관: 어디서 생활했어요? 

나: 콜롬비아에서 6개월 하고 멕시코에서 11개월이요. 

심사관: 그럼 뭐하면서 먹고살아요?

나: 한국에는 육아휴직이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나라 혹은 회사에서 매달 일정 금액 돈을 줘요. 

심사관: 뭐라고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 어디 있어요? 거짓말하지 마요. 내가 십수 년째 여기서 일하지만, 한국에서 육아휴직으로 돈 받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어요.

나: 그래요? 인터넷 찾아봐요. 바로 나와요. 통역관님. 알고 있지 않아요?

통역관과 마침 주변에 있던 대한항공 직원에게 육아휴직을 알지 않냐고 물었더니, 본인들은 현지 직원이라 모른다며 외면한다. 분명 아는 듯한 얼굴인데, 이런 일에 얽히지 않고 싶다는 표정이다. 매정한 사람들. 

그랬다. 이들은 내 가방에 뭐가 있는지는 관심사항 밖이고, 우리 가족이 미국에 불법체류하러 왔다고 의심하고 있던 거다. 나 한국에 돌아갈 집도 있고, 멀쩡한 직장도 있어. 난 단순히 휴가 온 거라고. 하지만, 도통 믿지 않는다. 심사관도 미웠지만, 옆에서 우리 가족을 범죄자 관점으로 통역하는 아줌마도 미웠다. 마치 일본 앞잡이 노릇하는 조선인 순사 같았다.


어떻게 해결하지 하다가, 회사에서 발급해 준 회사 근무 확인서 및 육아휴직 발령 공문이 생각났다. 심사관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문을 가방에서 찾아, 보여줬더니, 그는 비웃으며, 이런 서류는 초등학생 들이라도 10분이라면 만들 수 있다며, 서류에 나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한다고 협박한다. ‘이 자료가 위조서류면 공문서 위조로 나를 감옥에 넣으면 되잖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꿀꺽 삼키고 이성적으로 다른 방법을 찾았다.


매달 회사에서 받는 입금 내역을 보여주면 해결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대폰 인터넷 뱅킹에 접속했다. 어. 한데, 평소에 와이파이로 종종 문제가 생기는 휴대폰이 오늘도 말썽이다. 다행히 아이패드에도 은행 어플이 있어서, 접속이 되었다. 회사 이름으로 입금된 내역을 본 직원 행동이 약간 달라진다. 하지만, 어플 어디에도 내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거 진짜 내 계좌인데. 공인인증서가 없으면 어플을 열 수가 없단 말이지. 몇 가지 질문을 더한 후 다시 수용소 가서 대기하란다.


나는 수용소에 와서, 목적지에서 기다릴 예정인 누나에게 만일을 대비해, 급하게 문자를 보냈다. “누나. 나 이민국이야. 조사 중인데, 늦을지도 몰라. 다시 연락할게.” 아내는 벽에 휴대폰 금지라는 경고문을 가리키며, 혹시라도 꼬투리 잡힐 까봐 얼른 넣으란다.


아내는 통역하는 이를 생각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아무래도 물증 없이 말한 아내의 경우, 좀 더 심하게 범죄자 취급을 한 것 같다. 매일 범죄 의심자와 이야기를 해서 그렇겠지 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만, 나 또한 그녀의 의심 가득한 말투 및 눈빛에 기분이 좋지 않다. 


그렇게 10분 정도 흘렀나. 다행히 심사관이 입국해도 좋단다. 기분 나쁜 이 곳에서 한 시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던 우리는 서둘러 나갔다. 예약한 비행기에 여유 있게 탑승했고,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를 누나 가족은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그 덕에 기분이 조금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꿀꿀한 기분은 그 뒤에도 며칠간 가시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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