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axaca, Mexico_2천원의 행복
중남미에서 우리 소일거리 중 하나. 영화관 나들이. 보고 싶은 영화가 항상 있는 건 아니라서, 매주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달 한 두 번은 영화관 나들이를 한다. 영화관뿐 아니라 쇼핑몰, 아이들 실내 놀이터도 겸하고 있어서, 아이들과 아내도 좋아한다. 폭력성이나 선정성이 짙은 경우, 아이들 등교 후 부부 단둘이 가지만, 보통 가족 모두 가는 편이다. 그렇다고 우리 스페인어가 단순한 일상 대화를 이해할 정도지 영화에서 논하는 어려운 이론이나 철학을 이해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다행히 우리가 복잡한 사고를 요하는 난해한 영화보다는 마블 시리즈 같은 할리우드 액션을 좋아해서, 우리의 보잘것없는 스페인어로도 영화감상이 가능하다. 그간 영화관에서 보았던 영화를 세어본다. 어벤저스, 미션 임파서블, 트랜스포머, 스타워즈 등 돌이켜보면 모두 한국에서 봤던 영화의 후속 편이다. 즉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보다는 이미 검증된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과 봤던 것도 대부분 디즈니 계열 영화. 인크레이더블, 코코, 카3, 몬스터호텔. 다행인 것은 아이들 스페인어 실력이 늘면서,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영화 상영 중에는 딴짓하지 않고 오로지 영화에만 몰입한다. 한국에서 영화관을 아이들과 함께 가본 게 두세 번 정도 되는데, 아이들이 영화관의 어둠을 무서워해서, 영화 도중 상영관을 빠져나오기도 했다. 처음 콜롬비아에서 영화를 봤을 때도 상영관을 빠져나올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둠에 익숙지 않고, 언어마저 달라, 아이들이 제대로 영화를 즐기지 못해 안타까웠다. 하지만, 스페인어 실력이 늘어, 이제는 내용의 흐름을 이해하게 되면서, 우리보다 영화를 더 잘 즐기는 것 같아 흐뭇하다.
콜롬비아, 멕시코에서 우리가 애용한 영화관은 cinepolis.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중남미 1위, 세계 4위 멀티플렉스 체인으로 5천 개 스크린이나 있는 대형 영화관이다. 가격은 콜롬비아 9천페소(36백원), 멕시코 67페소(4천원)로 콜롬비아가 4백원 정도 더 저렴하다. 아무래도 영화 가격도 소득 수준에 영향을 받나 보다. 우리나라(평일 1만원, 1만천원)에 비해 너무 저렴했고, 게다가 수요일은 반값이라 2천원이면 영화를 볼 수 있다. 요즘은 표를 구매하면, 두 명이 한 명 값으로 볼 수 있는 할인행사를 해서, 내 기억에 제 값 주고 영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영화 상영 전, 극장 측은 관객에게 팝콘 없이 영화를 보는 게 키스 없는 로맨틱 영화를 보는 것 같다며, 팝콘을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이 마케팅이 성공했는지 아들은 다음부터는 팝콘을 사주지 않으면 영화를 보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가장 저렴한 팝콘 세트(탄산음료 1+ 팝콘 1+ 핫도그 1)가 139페소(8천원)로 이곳 물가로 보면 꽤 부담되는 금액이다. 영화보다 비싼 팝콘이라니.. 난 아들에게 139페소의 가치를 아이가 좋아하는 도미노피자에 비유해 다른 안을 제시한다. “아들아 139페소면 네가 좋아하는 도미노 페페로니 피자를 한 판 이상 먹을 수 있어. 다음에 영화를 볼 때는 집에서 팝콘을 튀겨가자. 그리고 남은 돈으로 도미노에 가서 페페로니 피자를 먹자.” 아들은 자못 심각하게 생각하더니, ‘좋아요’라고 내 제안을 수락한다.
여하튼, 그 덕에 주말을 빼놓고 우리 가족은 가끔씩 저렴하게 문화생활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중남미 사람은 그들 나름 독특한 문화가 있다. 그 문화가 때로는 함께 있는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는데 방해 요소가 된다.
태어난 지 1년이 안된 아이를 안고 온 애 엄마 때문에 고대하던 톰 아저씨의 만남(미션 임파서블)에 몰입하지 못한 적도 있었고, 상영 중 중요한 부분에서 영화가 멈춰 맥이 풀린 적도 있었다. 10분 정도 후, 영화 상영은 계속되었지만, 이미 흥이 깨져버려서, 다시 몰입하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한국 영화관에서 그런 애 엄마는 입장조차 되지 않았을테고, 상영 도중 10분 정도 영화가 멈추는 일에 대해서는 영화관 측에서 사과는 물론 관객들로부터 환불 소동이 있었겠지. 하지만, 이 곳에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은 볼 수 없고, 그 사이 이제까지 영화 내용에 대해 서로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휴대폰도 보면서, 영화가 재개하길 여유롭게 기다리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이럴 때마다 정말 한국과 다름을 느낀다.
영화를 보는 연령제한도 까다롭지 않다. 와하카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처음 본 영화는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공부보다는 다양한 체육활동을 유도하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애들을 학교에 보냈는데, 이런 기대에 걸맞게 어린이날(4/30)이 있는 주는 매일 학교 이벤트로 가득하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1박 2일 캠핑, 영화관 단체관람, 각종 체육활동 등. 하교 시 담임선생님이 다음 날 오전 수업 후 영화관람이 있고, 이후 집에 귀가한 뒤 오후 7시쯤 1박 2일 캠핑을 학교에서 할 예정이라며, 필요한 준비물을 말해준다. 특이한 점은 파자마를 입고 등교하란다. 아내와 상의했지만, 파자마를 등교 때 입고간다는 게 이상했다. 아마도 오후 캠핑하러 갈 때 쯤 파자마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 우리는 평소처럼 교복을 입혀 아이들을 등교시켰다. 영화 시간에 맞춰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를 어째. 영화관에 들어서자 우리 눈에 들어온 건 보라색 실크 파자마는 물론, 침실용 실내화까지 갖춰 신은 교장선생님. 주위에 알록달록 파스텔 톤의 잠옷을 입은 아이들 사이에 홀로 교복을 입은 우리 아이들이 기죽은 모습으로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친구들이 아이들에게 우리 존재를 알려줬나 보다. 당연히 자신들의 잠옷을 준비했으리라 생각한 아이들은 가슴을 쫘악 펴고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아마도 이제는 드레스 코드를 맞출 수 있다고 기대했겠지. “엄마 우리 잠옷 줘. 갖고 왔지?’ 아무것도 준비 안한 우리 부모는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은 드레스 코드를 맞추지 못한 채 영화관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고, 이에 대한 아이들의 투정은 이후 여러 날 계속되었다. 혹시나 여러분 자녀 중 학교에서 파자마 파티라고 하면, 우리처럼 흘려보내지 말고, 파자마를 입히시라.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미국 시골 마을이라서, 영화관에 대한 접근성도 그렇고 입장료도 비싸고 해서 전처럼 쉽게 영화관에 가지는 못한다. 그래도 지금 머무는 집에는 대형스크린에 질 좋은 음향을 들을 수 있는 스피커, 게다가 24시간 언제든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채널이 있어서 이런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만, 그래도 영화관 나들이를 대체하기는 어렵다.
중남미의 저렴한 요금 덕에 우리 가족과 한층 가까워진 영화관 나들이. 귀국 후에도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