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다룬다는 건 진짜 힘든거구나
어제는 어제, 오늘은 오늘.
이 말을 몇번을 되뇌인 후 몸을 움직였다.
그 말이 마치 주문처럼 상황은 조금 누그러들었다.
"일어났어?~" 먼저 말을 건 엄마의 목소리는 화해의 제스쳐였다.
"응~ 나 먼저 씻을게."
나 역시 적대감이 없다는 톤을 내비쳤다. 조금 어색하고 아직 감정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않았을뿐.
어제의 안좋았던 감정이 조금은 물에 씻겨내려져 간 듯 했다.
카페 나갈 준비를 하려고 방문을 열어두고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불현듯 들려오는 목소리.
"미안해~"
약간의 정적. 그리고 이어서 엄마가 말한다.
"아빠랑 오빠에게 서운한 것들까지 너에게 쏟아내버렸네.. 물론 너에 대한 감정이 없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리고 알게모르게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해야지 라는 시나리오는 정말 많이 만들어 두고 있었다.
"그래서, 속은 풀렸어?"
속이 풀렸다고 하면 그다음, 차분하게 엄마가 말투를 고쳐줬으면 하는 바램을 하나둘 꺼낼참이었다.
"아니 뭐..풀리진 않더라고."
"음.." 어떤 말을 해야할지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그 하고 싶은 말 대신, 엄마가 봤으면 하는 책을 방에서 꺼내어 쇼파에 슬며시 올려두었다.
마이클 싱어의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었다.
내가 본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 상처 안에는 예전부터 가족을 위해 희생을 많이 해왔지만,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중 누군가 엄마에게 짜증 섞인 말을 한다거나, 뭔가 스스로 내린 결정을 이야기 할때, 엄마는 자신이 엄마로서, 아내로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해준게 없으니, 못났으니 대응할 수 있는 힘도 없다고 느낀다. 혼자 삭히고 삭히다, 한번씩 그 상처가 곪았을때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엄마는 그 말의 의미를 뼛속까지 만들고 살을 붙인다. 그래서 때로는 큰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까봐.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감이 없다는 걸 함께 사는 구성원으로서 너무나 잘 느낀다. 강아지들도 같이 사는 가족들 중에 약자를 기가 막히게 알고, 입질하거나 짖어대는 공격을 한다. 하다못해 동물도 어떤 사람들이 약자인지 바로 알아채는데..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엄마가 조금 더 당당하고 주체적이었으면 싶다. 혼자 있는 엄마는 무인도에 있는 사람처럼 외롭고 쓸쓸해보인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혼자서 무엇을 하는게 신경쓰이고, 같이 챙겨줘야 할거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핑계일 수 있다.
슬프게도 그 모습이 내게도 보인다. 가끔씩 혼자서 길을 걷다가 주변 사람들을 볼 때 혹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때면,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내세울게 없고, 행복하지 않으며, 외롭고, 상대방이 더 커보인다.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상대방도 느낄게 분명하다.
엄마와 너무도 닮아 있는 나. 그런 자신의 모습을 닮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 그리고 나의 마음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이기에 떨칠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요즘 이런저런 일들로 나를 생각하게 되고, 타인을 통해 지금의 나, 과거의 내가 보인다.
구구절절한 개인사를 오픈해도 될까 싶지만, 이렇게라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다. 실은 아직도 해소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 어쩌면 또 이어서 쓰지 않을까.
추석 마지막 연휴날, 혼자 카페를 와서 멍한 마음에 일기를 써본다.
우연히 카페에서 본 <상상병 환자들>이란 책에서 자신의 마음의 병들을 일기로 기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나 역시 내 이야기를 조금 더 오픈해보기로 용기내본다.
*참고로 이 글을 읽은 분 중에 내게 위로나 공감의 메세지를 보내준다면 큰 힘이 될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