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세상의 끝을 달린 것처럼 숨을 몰아쉬며 5킬로미터를 완주했다.
내가 자주 달리는 곳. 아산 신정호걷지 않고, 중간에 멈추지도 않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 그 거리를 통과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지고, 또 다른 무언가가 조용히 세워지는 경험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에게 처음으로 스스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누군가를 붙잡고 말하고 싶었다.
“나, 뛰었어. 끝까지.”
돌이켜 보면 그 기억은 조금은 오글대며 웃기다.
중원엔 고수가 넘치고, 5킬로미터쯤은 아침 공복에도 가볍게 뛰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 길을 처음 건너본 이였다.
초보 러너에게 있어 5K는 학창 시절 전교 1등보다, 온라인 게임의 엔딩보다 더 찬란한 ‘완주’였다.
작은 성취는 내 안에 자랑이라는 기름을 부었고, 나는 그 기름에 불을 붙인 듯, 나를 칭찬하고 또 칭찬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조금만 기회가 주어지면 금세 스스로에게 도취된다.
누군가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쉬지 않고 뛸 수 있어요?”
나는 그때, 조금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계속 뛰다 보면 됩니다. 누구나 그렇게 됩니다.”
그 말속엔 처음 달리던 날의 고통은 감추고, 지금의 내 모습만을 내보이려는 욕심이 있었다.
나는 알았다. 내 말은 조언이 아니라 자랑이었다.
그렇게 도취된 채 달리다 보면, 시선은 점점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기록’. 나는 1킬로미터를 몇 분에 달리고 있는가. 어제보다 나아졌는가.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빠른가. 내 어플에는 내 기록이 분 단위로, 심박수로, 고도 변화로 분석되어 나타난다.
‘스트라바’라는 이 프로그램은 심지어 같은 길을 달린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고, 연령과 성별로 나를 비교한다.
경쟁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다가온다.
처음 5K를 달렸을 때, 나는 38분이 걸렸다. 거의 1킬로미터에 8분이었다. 기록을 본 나는 충격보다 기쁨에 가까웠다.
‘내가 해냈다.’ 이후 기록이 줄어들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자신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순수하지 않았다.
어느 날, 누군가의 18 분짜리 기록을 보게 되었고,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들끓기 시작했다. 오기였다. 나는 도전하기로 했다.
달리기 전 스트레칭을 하고, 페이스를 조절하며, 심박수를 관찰하고, 회복 시간을 고려했다.
무대뽀에서 체계로, 감각에서 계획으로 달리기는 옮겨갔다.
그러다 5K를 21분에 주파한 날이 있었다. 그날은 내게 축제였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날아갔다.
나는 누군가 기록을 물어올 때, 언제나 지금의 기록이 아니라 그날의 기록을 말한다.
우리는 종종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최고치를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 믿고 싶어 한다.
그것은 허세이자 자기 암시다.
그러나 기록과의 싸움은 늘 무사하지 않다. 경쟁은 곧 피로가 되고, 비교는 곧 자책이 된다.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걸음 같고, 더는 빨라지지 않는 자신의 한계 앞에 나는 자주 멈춰 섰다.
그리고 그제야 문득 물었다. “나는 선수가 아닌데, 왜 이토록 괴로워하고 있는가.”
시간이 흘렀다. 내 달리기는 이제 조금 다른 결을 띤다.
바람을 느끼고, 내 몸의 소리를 듣고, 지면에 닿는 발소리의 즐거움을 느낀다.
기록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는 나를 옭아매는 쇠사슬이 아니다.
경쟁은 게으름을 이기는 도구일 수 있지만, 삶의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안다. 달리기는 기록이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태도다.
나는 잘 달리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오래 달리고 싶은 사람이다.
앞으로도 나는 ‘즐런’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기쁨을 안고, 욕심을 견디며, 다시 나를 달래며 뛸 것이다.
계속 달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