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내 다리에는 익숙함이 묻어 있다.
달리기의 익숙함.
2~3일을 쉬면 몸이 무겁고,
이유 없는 불편함이 발끝부터 차오른다.
‘달려야겠다.’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의무가 아니라 습관이 되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습관을 지나, 하루를 정리하는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장비를 챙기고, 운동화 끈을 조이고, 문을 나선다.
기억나는 모든 계절의 공기가 나를 스쳐갔고 또 지나간다.
느린 바람을 앞지르고, 세찬 칼바람을 뚫고, 길을 박차고,
GPS 위에 오늘의 자취를 남긴다.
매일 보는 아이의 자람을 눈치채지 못하듯
익숙한 길도,
그 길 위의 풍경도 매일 조금씩 달라져 있다.
가로수의 잎은 어제보다 조금 더 진해졌고,
호수의 냄새도, 바람의 온도도 다르다.
대부의 달리기는 기록을 위한 달리기가 아니다.
훈련을 위한 달리기도 아니다. 그냥, 달리기 위한 달리기다.
속도도, 심박도, 페이스도 확인하지 않는다.
그저 몸 안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열기를 느끼고,
이마 위로 송골송골 맺혀가는 땀을 바라본다.
숨이 가빠오는 리듬과 함께,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을 배운다.
모든 달리기가 버거웠던 지난 나들이 있었다.
몸은 무거웠고, 마음은 그보다 더 무거웠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헐떡이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속도는커녕 생각도 따라오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거리를 계획할 수 있고,
심지어 오늘은 얼마나 힘들게 달릴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
달리며 풍경을 바라본다.
계절이 스쳐가는 방식, 사람들의 얼굴, 흙냄새, 바람이 지나간 자국.
내가 달리는 만큼
이 도시의 하루도 조금씩 지나간다.
아산 신정호 제방달리며 여유로움을 느낀다는 건...
무수한 날을 달렸기 때문이다.
"반복"
무수한 날들의 반복.
세상에서 반복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고, 풀 한 포기의 집요함이 바위틈을 연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반복할 수 있는 자는 장인이 되고
반복을 피하지 않는 이는 결국
질문을 받는 사람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된다.
달리기의 반복은
몸의 리듬을 정돈하고, 생각의 흐름을 정화한다.
혈압은 안정되고, 혈류는 부드럽게 흐르고,
요동치던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달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달리며 일을 구상하고, 달리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훈련이라기보다는,
오랜 반복이 허락한 조용한 특권이다.
이 여유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단지 달리는 몸만이 그것을 안다.
매일 나를 뛰게 만든 것은 의지보다도, 어쩌면 그 여유였는지도 모른다.
풍경을 누리며 고요하게 달릴 수 있는 것.
그런 달리기는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허락한다.
나는 이 뿌듯함을 오래오래 느끼고 싶다.
오래됨의 익숙함이 권태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내일도 다시 운동화를 끈을 조일 수 있기를...
그렇게 오늘도 여유로운 한 걸음의
반복을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