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걷히고, 하늘이 희미하게나마 제 빛을 되찾았다.
휴대폰 어플에 ‘양호’라는 말이 떠 있었다.
공기가 잠시 맑아진 틈을 놓칠세라, 아들이 캐치볼을 하자고 신호를 보낸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글러브와 연식구를 챙겨 들었다.
아파트 뒤편 주차장, 차들이 몇 대 세워져 있었지만 공을 주고받기엔
그럭저럭 괜찮은 자리였다.
짧게 몸을 풀었다. 아들과 마주 서서 공을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가까운 거리에서 짧게 던졌다.
하나, 둘, 셋. 몸이 풀리고, 온기가 돌고,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아들은 이게 프로 선수들이 몸을 푸는 방식이라 알려주면 혼자 으쓱해한다.
아들의 공이 내 글러브 속으로 묵직하게 꽂혔다.
짧은 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컸구나.'
아들이 야구를 좋아한 시간이 얼마나 되었던가.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처음 공을 던지던 날, 어설프게 손목을 꺾으며 빗나가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제는 다르다.
공이 날아오는 속도도, 묵직한 감각도, 확연히 달라졌다.
너는 그렇게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그 빠름이 대견했고... 아쉬웠다.
내가 던지고, 아들이 받고, 아들이 던지고, 내가 받는다. 공이 오고 간다.
공의 궤적은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다.
높게, 낮게, 길게, 짧게— 같은 글러브로 같은 공을 주고받지만,
단 한 번도 같은 길을 그린 적이 없다.
문득 생각했다.
그래, 길이란 그런 것인가.
가는 길, 오는 길, 왔던 길, 가야 할 길,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한 길.
그 길 위에서 너는 너만의 궤적을 그려 가겠지.
살아보니 알겠더라.
타인의 궤적을 따라가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다르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방향만 잃지 않으면 된다.
궤적은 그저 궤적일 뿐, 그것이 결론은 아니었다.
때로는 공이 글러브를 벗어나기도 했다.
땅에 떨어지고, 굴러가고, 사라지고.
하지만 우리는 늘 다시 공을 찾아냈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오래 걸려서.
그래도 결국 다시 집어 들었고, 던졌고,
또 다른 궤적을 남겼다.
방향을 잃어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도 우리는 웃었고, 공을 주고받는 일은 여전히 즐거웠다.
너의 생이, 나와 함께한 이 캐치볼처럼 재미있기를 바란다.
궤적이 달라도, 공이 멀리 날아가도,
한참을 헤매야 공을 다시 찾게 되더라도—
그 모든 시간의 합이 결국은 즐거움이 되기를.
언젠가 네가 삶의 길 위에서 흔들릴 때,
오늘 이 순간을 떠올렸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공은 원래 어디로든 날아가는 법이다.
예상보다 높이 솟기도 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던져지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다시 던지면 되니까. 다시 찾으면 되니까.
시시각각 다른 궤적이어도,
결국 아빠의 글러브에 꽂히고야 마는 그 순간처럼,
삶도 결국 그렇게 너만의 궤적이 남게 될 것이다.
나는 12살의 너와 공을 던졌고, 15살의 너와 공을 받는다.
그리고 20살의 너와도 날아가고 날아오는 공의 궤적을 그리고 싶다.
아들아.
그리고 네가 살아가며 마주할, 무겁고 벅찬 순간들, 두려움까지도...
가끔은 내게 던져라. 내가 받아내줄게.
그리고 다시 너에게 던져줄 것이다.
“괜찮다. 다시 던지자. 다시 찾자.”
언젠가 너와 너의 아들이 캐치볼을 하는 모습을,
너의 공을 받으며 생각해 본다.
그날도 내 두 눈에 담을 수 있기를. 그날이 오기를.
오늘, 날아가고 날아오는 공이 외갓집 가는 길처럼 즐거웠다.
그리고 먼지 걷힌 맑은 하늘 아래,
너와 나의 공은 오늘도 길을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