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때를 떠올려 본다.
아주 먼 옛날, 커피가 귀하고 특별한 무엇으로 여겨지던 시절.
어렴풋이 어설프게 기억나는 그때 나는 아마 일곱 살 언저리였을 것이다.
집안 찬장 한 구석에는 아이 팔 길이만 한 갈색 병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000 커피' 그리고 '000 프리마'.
그 병들은 마치 금단의 열매처럼 어린 나를 유혹했다.
어른들은 말했다.
"커피 마시면 머리가 나빠진단다."
그 말은 어린 내게 금기이자 두려움으로 새겨졌다.
그러나 어린 호기심은 두려움보다 깊고 강했다.
나는 어느새 허클베리핀과 톰 소여가 되어 모험을 시작했다.
커피병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다.
짙게 탄 냄새가 스르르 퍼져 올라와 콧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설레고 두근두근 거리는 순간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병 속을 살펴본다. 그 안에는 카키빛 작은 알갱이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중 하나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는 입 안에 집어넣었다.
퉷.
쓴맛은 전광석화처럼 퍼졌고, 나는 입을 다물 새도 없이 뱉어냈다.
머리가 나빠진다는 말이 왠지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뚜껑을 닫고,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병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곁에 놓인 또 다른 갈색 병이 눈에 들어왔다.
프리마… 멋있는 이름이다.
조심스레 뚜껑을 열자, 하얀 눈가루 같은 고운 가루가 가득 차 있었다.
손가락에 침을 적셔 콕 찍어 본다. 음… 우유 같기도 하고 전지분유 같기도 한 맛이다.
스푼을 찾아왔다. 작은 스푼으로 한 점 떠 입에 넣었다.
켁켁, 가루가 목을 타고 넘어가며 기침이 터졌다.
하지만 곧 입안에 퍼지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
전지분유보다 덜 달콤하지만 어딘가 따뜻한 맛이었다.
"어라, 이건 좋은데?"
나는 작은 모험에서 승리를 거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날 이후, 나는 몰래 프리마를 입 안에 녹이며 소소한 행복을 쌓아갔다.
찬장 옆 설탕도 살짝 맛보았다.
달콤한 설탕 두 숟가락이 입 안 가득 퍼질 때, 나는 세상의 어떤 보물도 부럽지 않았다.
일곱 살 인생에 찾아온 은밀하고 찬란한 기쁨이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나는 그들에게 이 신세계를 소개했다.
"이게 프리마야. 우유로 만든 걸 거야."
내 친구 창호와 상식이는 불을 처음 발견한 인류처럼 눈을 반짝이며,
아기 새처럼 입을 벌렸다. 나는 어미새가 되어 스푼으로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그 순간 우리의 우정은 프리마처럼 순백으로 빛났다.
우리는 찬장 아래서, 작고 소박한 축제를 열었다. 자주…
하지만 축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재난은 언제나 불현듯 찾아온다.
그날 저녁, 저녁밥을 먹고 '천하무적 멍멍 기사' 만화를 신나게 보고 있을 때였다.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안방을 뒤흔들었다.
"누구야? 안인식!!"
엄마는 손에 프리마 병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들켰음을 직감했다.
"너 이거 먹었어?"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 맛이 어떤지 한 번 먹어봤어…"
그러나 갈색 병 속 프리마는 한 숟가락의 흔적이 아니었다.
매일 조금씩, 아주 조금씩 퍼내던 흔적은 확연했다.
"한 숟가락인데… 반이 없어졌잖아!"
나는 결국 눈물과 함께 모든 것을 고백했다.
우유 맛이 나서 그랬다고, 다시는 안 먹겠다고.
엄마는 애들이 프리마를 먹으면 머리도 나빠지고 키도 안 큰다고 긴 설교를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엄포를 놓으셨다.
"한 번만 더 먹으면 아빠한테 다 얘기할 거야."
나는 도장이라도 찍을 듯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마와의 은밀한 시간은 그렇게 끝이 났고, 전쟁의 패배로 축제는 막을 내렸다.
세월이 흘러,
여든이 된 엄마는 하루에 믹스커피 한 잔을 즐기신다.
나의 아내는 가끔 카누나 바닐라라떼 같은 부드럽고 달달한 커피를 택배로 보내드린다.
"이건 훨씬 고급지고 맛있어."
엄마는 믹스커피를 드시며 웃는다.
가끔 엄마 집에 들러 밥을 먹을 때면 식사 후 나는 엄마와 함께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엄마에게 물어본다.
“엄마, 그때 기억나?”
우린 그때의 전쟁을 기억하며 달달한 커피로 평화를 나눈다.
이제 커피는 부드럽고 따뜻한 시간으로 우리 사이를 이어주고 있다.
엄마랑 더 오래 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