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달리기 창고

나는 살려고 달렸다

by 약속의 땅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12년 전의 일이다. 그전까지 나는 달리지 않았다. 숨이 차도록 몸을 움직이는 일이 내 삶에 끼어들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밤이었고, 눈을 붙이기 무섭게 다시 새벽이었다.

잠은 쌓이지 않고 줄어들었다. 야근이 일상이었고, 과로는 근무 조건이었다.

대가는 단순했다. 몸이 무너져 내렸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무겁고 길었다.

고혈압, 지방간, 고지혈증, 간수치 상승, 위염, 식도염, 십이지염.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다. 의사는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부터 운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따님이 스무 살 되는 걸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은 정직했다. 진단서보다 더 명확한 문장이었다.

나는 그날, 삶이 종이처럼 접히는 소리를 들었다. 두려웠다. 그냥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한순간에.

운동을 해야 했다. 무엇이든 해야 했다. 처음엔 수영을 택했다. 물속에서는 중력이 느슨했고, 땀 냄새가 없었으며, 뭔가를 버티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러나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이사로 도시를 옮기게 도었다. 옮긴 곳의 수영장은 추첨제였다. 하고 싶어도 선택받지 않으면 물에 몸을 담글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달리기였다. 나는 신정호라고 하는 집 근처의 호수를 발견했다. 둘레가 5킬로미터쯤 된다. 하루에 한 바퀴만 뛰자. 그 결심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삶이 복잡해질수록, 단순한 결심이 필요했다.


처음 뛰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어릴 적 달리기를 잘했다. 운동회를 하면 1등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나는 운동장에서 누구보다 빨랐다. 그러니 호수 한 바퀴쯤은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큰 착각이었다.

첫걸음은 가벼웠다. 바람이 가슴을 밀고 지나갔고, 다리에는 낭만이 붙었다. 그러나 1킬로미터를 채 가지 못해 폐가 바닥을 드러냈다. 숨은 끝까지 올라왔고, 다리는 돌처럼 무거웠다. 눈앞이 흐릿했다.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달릴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포기할 수도 있었다. 사람은 종종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다. 하지만 그날은 어딘가 달랐다. 걸어서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체념이 아니라 다짐이었다.


그렇게 나는 걷고, 조금 뛰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몇 날 며칠,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따라 걷고 뛴 끝에, 비로소 한 바퀴를 돌게 되었다.


그날 호수 위에는 물안개가 피어올랐고, 나는 그 안에서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무너졌던 몸이 비로소 제 위치를 찾는 듯하고, 정신은 숨 가쁜 시간의 껍질을 벗고 본래의 빛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때부터 달리기를 내 삶 속에 깊이 끌어들였다.

생존의 선택이었고, 동시에 삶을 다시 짓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단지 운동이 아니었다. 나를 다시 만드는 느린 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