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라는 이름의 신화

by 약속의 땅


20대에 해야 할 일

30대에 해야 할 일

40대에도, 60대에도…

해야 할 일은 늘 남아 있다.


서점의 자기 계발이나 인문학 코너를 걷다 보면

“40대에 읽는 논어”,

“50대에 읽어야 할 장자” 같은 책들이

조급해진 우리를 기다린다.


책들 주위를 맴돌게 되면 마치 ‘해야 할 일을 잃어버린 사람’이 된 듯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읽었어야 했는데,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살아왔나. 그래서 지금의 내가 이 모양인 것 같아서, 이제라도 읽으면 인생이 달라질까 하는 조급함이 급증한다.


세월이 흘러도 이런 책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이제는 사이비 종교처럼, 인문학의 탈을 쓰고 수준 놓은 책인 양 가면을 쓴 자기 계발서들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철학을 말하는 듯하지만, 철학자의 ‘말’만 차용할 뿐이고, 철학적으로 ‘살자’고 하진 않는다.


왜 그럴까?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바뀌지 않은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전제일까?


인생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고,

그 목적은 ‘성공’이라는 이름의 정답이라는 전제다.


이 성공이란 개념은 화려한 가면을 쓰고 있지만 결국 한 줄기로 수렴된다. 좋은 직업, 좋은 연봉, 좋은 위치. 그리고 그 모든 기반엔 ‘돈‘이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공에는 원칙도, 명확하고도 공정한 공식도 없다.


“무엇이 성공인가? “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대중적 유행과 같은 인식 속에서 유명한 사람, 지위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으로 치환될 뿐이다.


등산을 생각해 보자.

등산에서 정상은 명확하다. 지도에도 표시되고, 등산로도 구체적이다. 등반이 쉽진 않지만 인내의 대가를 치른다면 반드시 산은 정상을 내어준다.


그러나 ‘성공’은 다르다.

명확하지도 않고, 구체적이지도 않으며, 실제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성공할 거야.”

그리고 수많은 콘텐츠들이 말한다.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

막연한 성공에 대한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나는 지금 행복한가?”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가?”

만족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그건 ’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을 충실하고 온전히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노력의 부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생은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 순간, 주어진 자리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옳은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존재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질문을 받는다.

“넌 커서 뭐가 될래?”

“꿈이 뭐야?”

“비전이 뭐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처음부터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답을 강요받는다.

답하지 못하면

‘꿈 없는 사람’

‘목표 없이 사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그때부터 자기 가스라이팅이 시작된다.


모두가 그 질문에 뚜렷한 답을 갖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성향상 뚜렷한 목표가 있는 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그들과 비교되며, 또 한 번 궁지로 몰린다.

“봐라. 꿈을 가지니 저렇게 성공하지 않느냐.”


그러나 인생은 선이다.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선. 숨이 붙어 있는 한 삶은 계속되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다음 걸음은 자연스레 이어진다. 그 길 위에서 조금씩 내가 잘하는 것이 보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발견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공’이라는 불확실하고 실체 없는 단어에 에너지를 쏟을 이유가 없다.

그것은 정의되지 않는 것을 향해 정의 가능한 노력을 들이게 하는 신화이자 환상이다.


그리고 그 환상에 빠진 우리는 자연스럽게, 돈도 없고 명성도 없는 사람을 실패자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니 이제는 묻자.

*“성공했는가?”*가 아니라

“충실했는가?”

*“가장 인간답게 살았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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