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서 가족으로

by 약속의 땅

“다음에 밥 한번 먹자.”

“다음에 한 잔 해야지.”

“다음에 한번 보자.”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들 사이에 흔하게 오가는 말.

정거장처럼 잠깐 머물렀다 가는 그런 만남 속에서

마치 오래 보고 싶었던 사람처럼

우리는 익숙한 표정을 짓고 손을 내민다.


“잘 지냈지?”

“야, 그대로네.”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세종대왕이 남긴 자음과 모음이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다.


‘그래, 다음에 밥 한번 먹자!’

한 사회과학자가

사람들이 주고받는 ‘다음에’라는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기까지 평균 얼마나 걸리는지를 연구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기자들이 연구자에게 물었다.

“박사님, 사람들은 보통 얼마나 지나야 그 약속을 지키던가요?”

그 사회과학자는 이렇게 답했다.

“네… 다음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음에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오늘 종로에서 우연히 옛 지인을 마주쳤다.

반가운 인사 끝에 자연스레 ‘다음에’를 약속했고

그 이름은 내 카톡 친구 목록에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2천 개가 넘는 내 연락처 중

실제로 연락을 주고받는 이는 몇이나 될까.


업무나 단체톡을 제외하면

정작 진짜 ‘사람다운 관계’는 백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외의 수많은 이름들.

모두가 ‘다음에’ 속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다음에’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의 ‘숫자’보다는 ‘밀도’를 생각하게 된다.

마당발, 인맥, 좋아요…그리고 구독자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척도인지.


차라리 이제는

나 자신과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깨달음으로 내게 왔다.


‘다음에’로 미뤄지는 공허한 인연들에

더는 마음을 낭비하지 말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더 많이 웃고, 더 깊이 머물자.


가장 가까운 ‘지금 여기’의 가족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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