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선물
몸이 부서지고 나서야 시작한 달리기가 내게 준 선물을 소개한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계절 하나가 흘렀다.
아직 완연한 봄도 아니었고, 겨울의 찬바람도 몸을 다 떠나지 않았다. 몸무게는 5킬로그램을 비워냈다.
매일 밤 호숫가를 돌며 내 안에 쌓여 있던 오래된 무게들을 하나씩, 걸음마다 덜어냈다.
그리고 나는 운동을 시작하라던 의사의 경고처럼 날카로운 진단서의 문장들을 기억을 가지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피를 뽑고, 소변을 넘기고, 초음파 기계 위에 몸을 눕혔다.
의사는, 내일 다시 들러 결과를 확인하라고 했다.
그 하루는 의외로 길었다. 호수 한 바퀴보다도, 내달리는 5킬로미터보다도 훨씬 더 길게, 시간이 뻗어나갔다.
다음 날, 의사는 모니터 앞에 앉아 내게 말했다.
“운동, 열심히 하셨네요.”
의사의 손끝이 가리킨 화면 위에는 희뿌연 안개가 엉켜 있었다. 회색빛으로 퍼진 윤곽 없는 그림자.
“이게 지난번 선생님 간의 초음파입니다.”
그리고 화면을 넘겼다. 이번 사진은 다르다.
간은 이제 윤곽을 되찾고, 어딘가 단단한 물체처럼 화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안개가 거의 걷혔네요.”
그 한마디가 마음을 치고 지나갔다.
내 안의 장기가, 내 달리기의 결과를 증명하고 있었다.
의사는 몇 장의 종이를 넘겼다.
“간수치도 거의 정상입니다. 고지혈증도 많이 좋아졌어요. 이대로 계속 운동하시면,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지실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호숫가를 달리던 지난날들이, 마치 필름을 감듯 천천히, 선명하게 떠올랐다.
길고 어두운 시간이었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돌덩이처럼 굳어가던 저녁들.
혼자였고, 조용했고, 때로는 지고 싶었고, 매일 조금씩 다시 일어섰던 시간.
그 시간들이 이제, 내 몸이라는 집을 다시 짓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건물 위로 발라진 회색빛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원래의 흙과 뼈대를 되찾아가는 과정처럼.
달리기는 마법이 아니다. 그러나 달리기는 몸을 속이지 않는다. 달리기의 본질은 정직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부서진 몸으로 부서져라 달렸다. 그러자 몸은, 다시 짓기 시작했다.
움직인 만큼 연소되고, 땀 흘린 만큼 채워졌다.
서서히, 정직하게.
어떤 운동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몸을 되돌려주지는 않았다.
달리기는 몸의 가장 본질적인 시간을 되찾게 했다.
호흡이 허물어질 때마다, 폐는 다시 살아났고, 심장은 낡은 리듬을 버리고 새로운 박동을 익혔다.
달리기는 내 몸을, 오래된 나무를 손질하듯 천천히 깎고 다듬으며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그렇게 달리기는, 어느덧 내 삶의 루틴이 되었다.
‘몸테크’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을 만큼, 단순하고 확실한 보상.
어떤 투자도, 어떤 저축도, 달리기만큼 결과를 숨기지 않았다.
달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달리기 시작하면, 그것들은 내 몸과 마음을 통해 다가왔다.
바람이 어떻게 계절을 옮기는지, 햇살이 어떻게 하루를 누르는지,
그동안 지나쳐온 세상의 움직임들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내 몸을 통해 전부 선명해졌다.
오늘 저녁, 나는 다시 뛸 것이다.
들숨과 날숨의 경계에서, 내달리는 발끝이 박자처럼 바닥을 두드릴 것이다.
작은 박수 소리 같은 발자국들이 쌓이고, 나만의 레이스는 오늘도 계속된다.
계절의 변화를 달력으로만 알던 나였다.
아, 봄이구나. 이제 여름이네. 어느새 가을이야.
언제나 한 박자 늦게 알아차리던 계절을, 이제는 내 몸이 먼저 기억한다.
바람의 결이 조금만 달라져도, 온도의 미세한 차이가 피부에 닿아도,
몸은 이미 다음 계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달리기가 준 선물이었다.
시간보다 빠르게 몸으로 계절을 살아내는 일.
정직하게 나를 대하면, 정직한 답을 들려주는 운동.
달리기는 더 이상 나를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니라,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일이다.
나는 계속 달릴 것이다.
달리기는, 나를 다시 짓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