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_달리기 창고_러너 ing

5K에서 10K로 가는 길

by 약속의 땅


5킬로미터를 완주한 어느 날,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이 길을 조금 더 가보고 싶다.’

몸은 여전히 서툴고, 숨은 쉽게 가빠졌지만,
러닝이라는 세계의 문을 두드린 것만으로도 어딘가에 소속된 기분이었다.
아직은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문 앞에 서 있는 나였지만.

그때 마음속에 하나의 숫자가 떠올랐다 — 10킬로미터.

5K를 두 번 뛴다고 생각하면 간단할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 거리에는 반복의 지루함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했고,
숨 막히는 순간을 건너가는 끈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작고 단단한 마음 하나가 필요했다.


훈련은 거창하지 않았다.
500미터씩, 아주 조금씩 거리를 늘렸다.
5.5킬로미터를 일주일, 또 하루는 6킬로미터를 일주일.
7K, 8K, 9K… 그 숫자들은 작게 쌓였고,
그 위에 나는 하루하루 내 작은 숨을 얹어갔다.


거리가 늘어가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건 호흡이었다.
숨이 가슴 끝에서 부서지지 않고,

조금 더 깊숙한 곳까지 닿았다.

폐가, 오래 닫혀 있던 창문처럼

서서히 열리는 느낌이었다.


호흡이 편안해지자, 몸의 미세한 부분들이 살아났다.
흔들리던 발목이 단단해졌고,
종아리 깊은 곳에 고요하게 자리한 근육들이
조금씩 몸의 중심을 붙잡아 주기 시작했다.

정직하게 흘린 땀의 대가가
내 몸 구석구석에 신선한 변화를 남겼다.

러닝을 마치고 씻을 때, 무심히 허벅지를 만졌다.
손끝에 닿은 결이 이전과 달랐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그 변화는 근육에만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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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킬로미터를 향해 가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안의 기준을 바꾸고 있었다.

‘될까?’라는 의심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그건 운동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삶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0K를 완주한 날, 나는 알았다.
나는 이제 진짜 러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숨이 찬 운동이 아니라,
숨을 돌려주는 시간이 되어버린 이 러닝 속에서,
나는 거리를 정복하기 전에 나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누구의 인정도 필요하지 않았다.
내 발로 밟아낸 거리와 시간들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나에게 이름을 건넸다.
'러너'라고.


10K는 내게 속도를 주진 않았지만, 방향을 주었다.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더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아주 조용하고 단단한 확신이 내 안에 깃들기 시작했다.


그 길을 지나오면서 나는 알았다.
나는 더 이상 단순히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러닝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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