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JK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앤비 Aug 17. 2020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축복

이래저래 중국어를 공부한 지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첫 일 년은 본토의 어학당에서 공부를 했고, 지난 6개월은 코로나로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처음 중국어를 배울 때는 성조의 찬란한 변화에 난감했었고, 1년이 지나면서는 한자의 난해함에 놀랐다면, 지금은 끝없는 한자의 수와 그것을 외우고 또 외워도 까먹는 나의 기억력 쇠퇴함에 당황하곤 한다. 그래도 재미있다. 미국에서 영어공부를 했을 때와는 다르다. 공부하는 게 어렵고 힘들지만 즐겁다. 왜일까?


나에게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생존을 넘는 목표를 위해 공부하고 있고, 좋은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공부하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이 공부를 언제까지 얼마나 더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지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본래 사람을 존귀한 존재로 만드셔서 그런지, 존귀한 사람을 섬기기 위해 무엇인가 한다는 건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본토에서도 그랬고 지금 분당의 한 학원에서도 말이다. 신기하게도 지금 나의 학원 선생님은 내가 원래 살고 있는 본토지역에서 공부를 하고 학위를 땄다고 한다. 지금 이 선생님과 공부한지도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준비해 학생들을 잘 가르치려고 노력한 흔적이 그녀가 매일 나누어주는 끝없는 자료와 숙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2시간 수업을 하는 동안 쉬는 시간 없이 따발총을 쏘듯 가르친다. 수업을 듣다 보면, 이 분은 수업을 가르치는데 완전히 몰두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수업시간이 후딱 지나가곤 한다. 이런 수업을 하루에 4-5개 정도 쉴 새 없이 가르친다. 그리고 잘 가르친다. 나이가 그리 많지도 않은데, 한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과 그녀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좋은 선생님은 학생에게 효과적인 배움뿐만 아니라 공부에 대한 열정과 더 잘할 거라는 소망을 함께 선물하곤 한다. 내가 중국어의 난이도에 당황해할 때, ‘괜찮아질 거야.’라는 안위와 ‘더 열심히 하면 돼!’라는 속삭임 같은 거 말이다. 


어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앞으로도 계속 중국어를 가르칠까? 아직도 젊은 나이에 이미 높은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은 과연 은퇴할 때까지 계속 그 일을 하게 될까?’ 모든 일은 어느 정도 반복적이고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때론 보수에 대한 불만족과 동료, 상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도 그만두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날 때면 항상 동일하게 들었던 생각이 있다. ‘이런 분들이 정말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이와 같은 나의 바람은 단언컨대 나를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들이 각자 자신의 직장에서 반복적인 일과의 치열한 싸움, 관계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인내, 자신의 꿈과 비전에 대한 고찰, 그리고 사명에 대한 결단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아쉬움이 먼저 드는 건 왜일까?


생존을 넘는 목표와 좋은 선생님을 통해 나는 지난 일 년 반 동안 많은 것을 얻었다. 그런데 내 삶을 통째로 바꾸어 준 나의 영원한 스승, 나의 참 좋은 선생님이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내가 예수님을 통해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고, 지금도 그 은혜를 받고 있는지 잘 가늠할 수가 없다. 그저 웃음이 나온다. 나에게 생존을 넘는 목표를 주신 그분께, 또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배울 수 있는 축복을 주신 나의 영원한 선생님께 이 찬양을 흥얼거려본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매거진의 이전글 만보를 걸으며 깨달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