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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앤비 Dec 21. 2020

두 번째 퇴사 고민

가장 바쁘고 힘들다는 광고업계에서 6년이 넘는 시간을 멈출 줄 모르는 불도저로 일하다가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육아휴직을 했고, 돌이 될 즈음 창업을 하기 위해 첫 퇴사를 했다. 


1인 문화기획사를 설립해 3년 가까이 공연, 워크숍 프로그램 기획과 다양한 굿즈, 콘텐츠들을 제작하며 자유롭게 일하면서 그 사이 둘째를 출산하며 아들만 둘인 엄마가 되었다. 


그러다가 지난 5월 우연히 파트타임 조건으로 이직했다. 일을 멈춘 건 아니지만 다시 직장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에 긴장되었다. 맡은 업무에 신경을 계속 써야 하니 정신은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었고, 종종 아이들의 하원이 늦어지는 일이 생기면서 루틴 하지 않은 업무에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내느라 바빴다. 


그러다 입사 3개월이 되는 시기에 인생 첫 이석증을 겪게 되었다. 단순히 달팽이관의 돌멩이 하나 빠진 것치곤, 생사를 헤매는 정신적인 충격을 겪었다.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도 이렇게 심각한 건 보기 드물다고 하셨고, 나는 3일 강제 셧다운 상태로 1일 1 물리치료를 받았다. 


힘없이 누워있는데 비로소 놓치고 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과 집안 곳곳에… 그동안 내 손이 닿지 못했던 현실을 보니 참 한숨이 나왔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뭘까? 나는 나만의 것이 아닌데… 이렇게 강제로 아이들과 남편, 집을 돌아보게 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건강이란 걸 정말 너무 당연하고 쉽게 생각했구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서른셋, 두 아이를 출산한 몸이 되어서야 알았다. 업무를 조정해볼까? 아니면 그만둬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고, 조금이라도 업무를 덜면서 라이프 밸런스를 잡아보는 방향으로 회사에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생각보다 한 번 세팅된 업무환경을 조정하는 것은 어려웠다. 하루 정도 재택으로 출퇴근 에너지를 세이브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야기해보자고 하셨는데, 부담은 되었지만 그래도 이른 포기를 하고 싶지 않은 일말의 욕심에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석증 이후로 한 번 무너진 내 면역력은 걷잡을 수가 없는 도미노처럼 넘어졌다. 대상포진, 어지럼증, 불규칙한 생리, 목 담 증상, 허리 통증, 발목 접질림 등 이렇게 버라이어티 할 수 있나 싶을 만큼 몸 곳곳에서 아우성치는 느낌이다. 


이비인후과, 한의원, 정형외과, 산부인과, 피부과… 틈나는 시간들을 병원에 쏟고, 피로회복제와 비타민들을 여러 통 끼고 살면서 겨우겨우 버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12월이 되었다. 첫째 주 어느 날, 아이들을 재우며 같이 잠이 들었는데 새벽 2시 갑자기 눈이 떠졌다. 이건 뭔가 이석증과 비슷한 느낌처럼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이대로 다시 잠들면 왠지 모르게 이석증이 다시 생길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꼼짝도 않고 누워서 눈도 못 감고 천장만 보고 밤을 하얗게 새웠다. 몸에서 다시 신호를 강하게 보내는 느낌… 


버스를 타고 있는 듯한 울렁거림이 계속 있었지만, 겨우 진정하고 출근을 했고… 정신줄을 꼭 붙들고 업무를 마친 뒤, 팀장님께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저 퇴사해야 할 거 같아요”


많은 생각이 스쳤다. 면접에 당차게 포부를 밝히던 자신감 넘치던 내 모습.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하는 가벼웠던 발걸음,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긴장감, 새로운 업무들에 신입처럼 허덕이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퇴사는 나에게, 회사에게 참 미안한 결정인 듯하다. 광고업계에서 달려보던 기억이 가득한데, 이미 내 몸은 아이들을 출산하느라 약해져 있었고, 퇴근 후에는 또 다른 육아 출근을 해야 하는 생활패턴으로 끝없이 소모할 수밖에 없는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으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절대적으로 같을 수 없는 거겠지…


이번 결정으로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았다. 매일 묵상의 시간으로 깊은 교제 가운데 평안과 감사를 고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제대로 된 판단력도 흐려진 채 급급하며 일해왔다. 눈 앞의 상황이 급한 나머지 기도의 시간을 쉽게 포기해버린 나. 


콘센트가 뽑힌 것도 모르고 충전된 배터리만 믿고 내 힘으로 달려오다가 어느 순간 소모되고, 방전되어버린 상태가 바로 지금의 내 상태다. 


호기롭게 재산의 반을 가지고 떠났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탕자 둘째 아들처럼, 사울에게 쫓기어 블레셋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체하는 다윗처럼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내 모습을 본다. 


그래서 일을 마무리하는 데로 ‘기본 중의 기본’을 다시 재정비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또한 맡겨주신 가정(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도 4-50대 더 건강한 모습으로 버팀목이 될 수 있게 퇴사 결정을 한다.


번 아웃된 상태에서 주님 앞에 다시 나아가, 나의 존재 이유와 함께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비하여 천국을 살아가는 자로 기본자세를 익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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