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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앤비 Jul 19. 2020

세상의 선과 악 vs 성경의 선과 악

하나님의 방법 

이 글은 이런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하나님의 방법이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에 있는 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성경 속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분



성경 이야기를 듣거나 읽다 보면 하나님의 방법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이해가 안 될 뿐만 아니라, 솔직히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는가?’라고 반감이 들 때도 꽤 많다. 예를 들어, ‘왜 하나님은 하필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선악과가 없었다면 아담과 하와가 애초부터 죄를 지을 수 없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의 마음을 더 어렵게 했던 사건은 선악과 사건 뒤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이다. 


아담과 하와가 두 아들을 낳았다. 첫째는 농사짓는 가인, 둘째는 양을 치던 아벨.  시간이 지나 가인은 자신이 거둔 농작물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다.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 아무리 성경을 찾아보고 생각해 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곡물보다 고기를 좋아하시나?’

‘하나님은 첫째보다 둘째를 더 좋아하시나?’

‘아벨이 가인보다 키가 더 크고 잘 생겼었나?’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다시 읽는데 한 절이 눈에 띄었다.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 4:5)


그런데 이때 좀 이상한 걸 느꼈다. 서운할 순 있지만 왜 '화'까지 났을까? 가인은 자신이 드린 제물을 하나님이 당연히 받을 거라고, 아니 받으셔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물을 받고 안 받고는 하나님의 몫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화가 났다. 하나님이 자신이 드린 것을 받지 않으시니까 몹시 분했다. 


‘하나님, 당신이 왜 내 동 생것은 받고 내 것은 안 받는 겁니까? 이거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농사지은 거잖아요. 내가 이만큼 당신을 위해서 했으면 당연히 받으셔야 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그런데 그가 분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왜 화가 났느냐? 왜 네 얼굴 표정이 변했니? 네가 '선'을 행했다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느냐?” (창 4:6-7)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을 행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이게 나에게  좀 충격이었다. 내 눈엔 가인이 지금까진 잘못한 게 별로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가인이 선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가 악을 행한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드리는 가인의 마음을 보셨고, 그의 마음의 중심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아닌 ‘내가’ 드리는 제물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지 않았다.   


‘선’ ‘good’ 히브리어로는 ‘ט֑וֹב ’ (tov)인데, 이 단어는 창세기 1장에 빛을 창조하시고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좋았다’는 부분에 쓰인 단어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바로 ‘선’이고, 그가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 바로 ‘악’이라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선과 악은 그래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는 선과 악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게 성경이 말하는 선이 아닐 수도 있고, 내가 판단하기에 그른 것, 옳지 않은 것, 악한 것이 하나님의 시선으로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노아의 가족만 살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지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 고선 그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말할 수 있었는지


왜 야곱은 자신의 딸 디나가 강간당하자 그녀의 오빠들이 강간한 자들을 복수했을 때, 잘했다고 하지 않고,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창 34:30)라고 도리어 복수한 아들들을 책망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한 남자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밧세바를 취한 다윗이 예수님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건지


어떻게 수치스러운 창녀 라합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는지


어떻게 예수님은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밖에 서 있는데,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인지


그동안 답을 찾지 못해 꽤나 불편하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고 믿어왔던 내가 바로 세상이 말하는 선과 악의 기준과 성경에서 말하는 선과 악의 기준이 다름을 깨달았을 때 자유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방법, 또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며 살든지, 아니면 내가 믿는 하나님의 선과 악을 배우고 이해하고 분별하며 살던지. 


바로 이 선택이 나의 신앙생활의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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