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랜드(Herland)/샬럿 퍼킨스 길먼
그는 날쌔고 건장한 젊은 산림 관리인의 얼굴을 보면서 “여자가 더 약하니까요”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경주마가 짐마차용 말고 다르게 생겼다고 해서 약하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 책 속에서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나라가 있었다는 전설은 종종 흥미로운 상상력의 토대가 된다. 이를테면 ‘아마조네스’의 전설은 진위여부를 둘러싼 논쟁 하에서 여러 가지 대중예술을 파생시켰다. DC코믹스의 히어로 중 한 명인 ‘원더우먼’도 이 설화를 토대로 하니, 얼마나 잘 알려진 ‘썰’인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전투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아마조네스 전사들’의 이야기처럼, 어떤 작가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오직 여성만이 일군, 여성만이 사는 나라인 ‘허랜드(Herland)’라는 멋진 소설을 펴냈다. 여성들로 구성된 유토피아에, 현실에 젖은 남성이 침투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할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오직 ‘여성만’ 사는 숨겨진 나라가 있다는 이야기에, 여행 중이던 남성 셋은 과감히 그곳을 향해 들어가고자 마음먹는다. 근처에 살고 있는 현지인이 말하길, 그곳에 갔다가 돌아온 남자는 한 명도 없단다. 하지만 이들은 ‘남성다운’ 호기로움으로 무장한 채 미지의 국가, ‘허랜드’에 침입을 시도한다. 무리 중 한 명인 ‘테리’는 남성으로서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그는 허랜드에서 여성을 여럿 거느리고 활개를 칠 생각에 들어가기 전부터 신나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셋에게 있어 허랜드는 그다지 발전하지 못한 국가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입구가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있어 내부를 쉬이 볼 수가 없다. 이들은 심지어 허랜드에 여자만 살고 있다는 말이 거짓일 거라 추정한다. 근거는? 허랜드를 둘러싸고 있는 요새나 장벽 같은 구조물이 떨치는 위용이다. 그들에 의하면, 이렇게 튼튼하고 멋진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남성에게만 있으므로 여성들이 이걸 다 만들었을 리는 없다는 거다. 그리고 여자는 보석이나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니 꼬드기기 쉬울 거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는다. 남성으로서의 자신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들의 고정관념에 힘을 실어 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허랜드 주민의 태도였다. 나무 틈새에서 조우한 허랜드의 여성 몇 명은, 편견으로 똘똘 뭉친 남성 셋이 내민 아름다운 물건에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여자들은 아름다운 물건에 사족을 못 쓴다’는 고정관념에 무게를 더한다. 그러나 삼인방은 세 명의 허랜드 여성에 의해 허랜드 내부로 ‘잡혀가면서’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허랜드의 여성들은 이들이 눈앞에 드리운 물건을 보고 ‘홀린’ 것이 아니었다. 그저 ‘호기심’이 들어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언어를 비롯한 ‘다른 세계’를 가르쳐 달라는 명목 하에 구금을 당한 세 명의 침입자는 난생처음 당해보는 관계의 역전에 얼떨떨해한다. 모두 여자인데, 생각보다 전사들은 힘이 세고, 가뒀으면서 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며 정중하게 대한다. 언뜻 보니 탈출하기도 쉬워 보인다. 그래서 틈을 공략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슬프게도 실패하고 만다. 겉으로 따스한 환대를 보여 주니 틈새가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실은 허랜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감시가 뒤따르고 있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탓이다. 당연히 이들이 도망을 가려하는 것도 처음부터 모두 알고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며 구경했을 뿐이다.
‘여자다움’이 아니라 ‘사람다움’이 지배하는 허랜드에서, 기존 세계의 가치관을 유지하는 세 남성은 상황에 좀처럼 적응하기 쉽지 않아 한다. 특히 테리, 여성들과의 향락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던 마초 그 자체의 캐릭터는 ‘여성스럽지 않은’ 허랜드의 주민들을 진절머리 나는 존재들로 간주한다. 따라서 일행인 두 명에게 끊임없이 이곳은 이상하며, 빨리 탈출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서술자를 포함한 나머지 둘은 이 기묘하고 독특한 세계에 점차 적응해간다. 정말로 남성이 없고, 신성에 의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허랜드에 말이다.
허랜드는 문화와 기술이 다른 세계(우리가 살고 있는 기존의 세계) 못지않게 고도로 발전했으며, 허랜드를 지탱하고 있는 중심 기조는 ‘모성’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희생주의 모성애라기보다는 세상 만물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전지적, 신적 사랑에 가까운 개념이다. 허랜드의 수많은 어머니들은 양육을 희생이라 믿지 않는다. 자식도 어머니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다. 자식이 해야 하는 것은 어머니들을 생각해서 ‘멋지게’ 살아가는 것이다. 허랜드는 논리적이지만 다정하며,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허랜드에서 여성은 ‘여성’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이다.
오직 자신들만의 국가에서 지낸 탓에 다른 세상을 알 길이 없었던 허랜드의 주민들은 침입자 셋을 반가워하며, 이들을 통해 바깥 세계를 배운다. 이때 허랜드의 주민들이 보인 태도는 혐오보다는 순수한 궁금증이 가득한 면모다. 가령 ‘처녀’라는 말을 듣고 수컷에게 해당하는 말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든지, 남성들이 ‘우리가 당신들을’ 해칠 수 있다고 말하니 그게 아니라 ‘우리 쪽에서 당신들을’ 해칠까 우려된다고 말한다든지. 순수한 비판에 부딪힌 세 명은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몸담았던 ‘다른 세상’의 개념을 재고하며 허랜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즉 자신들의 사회에 존재했던 ‘여성스러움’이란 그저 사회적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깥 세계에 가보고 싶다는 어느 허랜드 주민을 걱정하기까지 한다. 아름답지 않고, 너무도 다른 ‘그 세계’에 발을 들이게 하기 싫어서.
물론 ‘테리’는 동화에서 제외다. 허랜드에서 지내는 동안 세 사람은 각자 허랜드의 주민 한 명씩과 연인이 되지만, 두 명의 마음과 다르게 테리는 오로지 여자를 만나고 싶어 연을 맺는다. 그는 끝까지 주장한다. 여성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이며, 스스로 설 수 없고, 어머니는 슬하에 아이들을 거느리고 희생과 봉사를 해야 하는 존재라고. 그러다 결국 허랜드에서 문제를 일으켜 셋 모두 (인도적으로) 추방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작가가 탐험기를 적듯 적어 내려 간 허랜드의 시스템을 읽고 수없이 상상하며 왠지 모르게 작가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거의 직접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내뱉으며 이 세상이 가져야 할 모습을 그린 작가 길먼에게는 과연 글을 쓸 ‘자기만의 방’이 있었을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너무도 분명하게 느껴져 서글프기도 한 작품이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은 유토피아를 닮고 싶어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디에도 없고 존재하지 않기에 유토피아인 법이지만, 이데아를 모방하는 현실 속 나와 우리는 ‘닮아 가기 위해’ 노력한다. 완벽한 지상낙원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바라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어귀까지는 닿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허랜드의 반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닮기 위해 노력해 보고 싶다. 나의 세상이, 이 사회가 허랜드가 표현하는 낙원의 색을 닮아 진정한 ‘아워랜드(Ourland)’가 되어 갔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