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브라이언 무어
그럼 나는 듣는 이가 없는 기도를 해 왔던 거야? 방금 한 고해성사는 그냥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 거고? 그래, 그렇다면 이 모든 게 잘 설명돼. 이 모든 불행, 바보 같은 짓들, 아무 소용도 없는 9일 기도, 한 번도 답을 얻지 못한 기도들. -본문 중에서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인물을 그려낸 작품들만이 주는 희열이 있다. 각종 능력을 겸비한 것은 물론 창조주(작가)가 부여한 행운까지 '레벨 업' 하듯 족족 타먹는 그들은 독자인 '나'와는 그다지 닮은 점이 없다. 그러나 이 놀라운 인물들에게서 범인(凡人)스러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면 공감력이 십분 발휘되고 만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와 대척점에 서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인물들에게서 보편성을 찾아낼 때의 희열만큼 내면을 파고드는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
이에 반해 무채색 계열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은 무색무취 같아 보인다.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 밀어내듯, '나'처럼 지나치게 평범한 인물은 재미가 없다. 특출 난 데 없지만 딱히 모난 데도 없기에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다고나 할까. 때로는 나와 너무도 흡사한 인물을 발견할 때면 묘한 혐오감이 일기도. 결국 현실의 독자와 어느 정도는 유리된 주인공들만이 시선을 잡아끌곤 한다.
아마 이 책의 주인공, '주디스 버틀러'는 그런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평범한 인물에 속할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잘난 데가 없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도 매번 외면받는다. 부모님 대신 키워주신 이모(작중 돌아가신 것으로 나타남)에게서는 감정적 억압을 주로 당해 왔던 듯하고, 나이가 들었음에도 번듯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 거처로 삼은 하숙집 이웃들과 주인에게서도 번번이 무시당한다. 물론 그 자신은 '내가 그들을 외면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모두가 주디스와 멀어지고 싶어 한다.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은 보잘것없는 한량일 뿐이다.
몇 자 적기만 했는데도 주디스가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을 테다. 주디스 자신도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알게 모르게 비관한다. 그 여파가 음주로 나타나는데, 가뜩이나 호감형이 아닌 인물이 술까지 좋아하니, 자못 비참해 보인다. 유일한 친구라 믿고 자주 방문하는 존재들은 주디스가 없을 때 그를 헐뜯기만 한다. 아이들마저도 말이다. 집 앞까지 배웅하는 것도 싫은 티가 역력하다. 술에 취해 주사를 잔뜩 부리고 나서는 거의 모든 인물들에게 '대놓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된다.
작품 말미에 이르러 주디스는 신에게마저 의문을 품는다. 아일랜드의 보수적인 문화를 그대로 답습한 그가 신을 부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벼랑 끝까지 몰렸다는 뜻이기도 할 것인데, 한 번쯤 기도의 응답을 줄 법한데도 신에게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주디스의 삶은 끝까지 고독하고 쓸쓸하다.
이런 '보잘것없는' 주인공 주디스 버틀러는 분명 흥미로운 인물은 아니다. 그 어떤 행운도 거머쥐지 못했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지도 못했다.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하숙집을 전전하며, 인간관계에 끝없는 어려움을 느끼는 '나이 든 여성'이다. 지독한 회피형이기도 하다. 다소 부자연스럽고 과장하는 듯한 태도와 말씨는 현실에서 마주했다면 절대 친해지지 못할 인간상임을 보여준다. 주변인과의 교류에 조금이라도 난관을 마주하면 해결하려 하지 않고 피해 버리는 모습은 답답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주디스가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확연한 감정이 하나 있다면, 바로 '연민'이다. 주디스는 생을 거닐며 느끼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총체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나, 피하고 싶은 나,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 적응을 어려워하는 나. 그렇기에 우리는 주디스의 하루하루를 따라가며 마음껏 혐오와 연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기 연민을 발산할 수 있다. 내가 아닌 나인 셈이니. 그러다 보면 이 비참한 주인공의 삶을 조금은 사랑으로 바라볼 마음이 점차 솟아오른다. 나의 삶에 존재하는 어두운 그림자마저도 끌어안아 줄 용기는 덤.
문학 작품 속 대다수의 인물처럼, 우리 모두가 선택받은 자일 수는 없다. 물론 모두가 각자 삶의 주인공이기에 가장 특별한 아무개이겠으나, 70억 인구 중 내가 단연코 가장 뛰어난 인간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만의' 세상과 내가 '속한' 세상 사이의 간극을 메우다 보면 스스로가 사실은 결점투성이라는 점을 깨닫는 시간도 왕왕 찾아온다. 주로 밤에.
하지만 유일하고 유별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하찮은 미물로 만들지는 않는다. 유령만이 그림자가 없는 존재이듯, 별이 빛나는 밤에도 내 발밑에는 늘 어두운 주디스가 있다. 즉 그림자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표식인 셈이다. '보통 사람'이기에 가진 것을 떼어내려 애쓸 필요가 있을까? 그것조차 내가 살아 있기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나만의 보잘것없는 주디스가 실은 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의 흔적을 열심히 보듬어 가다 보면 스스로를 못내 사랑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