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상위 0.1% 의대 간 아이들의 비밀

운을 넘어서는 삶의 태도

by 고백맘

‘의사 사주’라는 말을 들었던 누구는 재수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반면, ‘의사 사주’라고 했던 큰아이 친구 중 한 명은 군대에서 뒤늦게 공부해 의대에 합격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는 이 운이 맞았고, 누구에게는 틀렸다.

운이란 분명 존재하겠지만, 이처럼 운명이 엇갈린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큰아이 친구 중 의대에 진학한 아이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예전, 시내 유명 타로 집에서 모두 ‘문과 계열’을 권유받았다.

당시 아이들의 실력은 0.1%의 싸움을 통과할 만큼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그것도 현역으로 의대에 합격했다.


돌아보니 그들은 ‘운’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당시 철학 수업을 들으며 엄마들끼리 친분을 쌓았기에 아이들의 상황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은 빡빡한 수업에서도 숙제, 자료 준비에 열심히였고,

팀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며 친구들을 도왔다.

자기 자리에서 지독히도 성실했기에 그들은 실력이라는 장벽마저 뛰어넘고,

불리한 운도 거스르며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반면,

큰아이는 "열심히 했으면 영재고에 합격했을 것"이라는 운을 가졌지만,

중등 시기 방황 끝에 겨우 정신 차려 과학고에 진학했다.

수학, 과학을 좋아했던 아이였기에 적성에 맞는 학교를 선택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 또한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니, 초년 운은 좋았다.

든든한 부모님과 주위에 잘 살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넘쳤지만,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보다 남과 비교하는 마음과 반항심만 가득했다.

학업 운이 좋다는 스님의 말에 뒤늦게 공부해 재미를 붙였고,

20대 때도 임용고시나 대학원 진로를 권하는 수많은 사주 상담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선택했다.

부모 곁에서 여행이나 다니며 편안히 살았던 인생처럼, 모든 것이 술술 풀릴 줄 알았다.


지금 와서 드는 내 사주에 대한 해석은, '좋은 운일 때, 주위가 그렇게나 도와줄 때 좀 열심히 살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다.


그런저런 운까지 다 놓치고 인생이 꼬여버린 후에, 가진 것 하나 없게 되었을 때.

그제야 나는 있어야 할 자리를 찾고,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좋은 운은 그때 다 놓쳤고, 누군가의 애간장을 녹였으며, 마이너스 통장 빼 쓰듯 좍좍 빼냈기에,

지금은 받은 만큼 누구에게든 되돌려준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것도 아픈 몸을 부여잡고 에너지까지 탈탈 쓰면서. 계속 때를 놓쳤기에 난 팔자타령을 할 수도 없다.


아빠를 병원에서 모시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자책하던 어느 날, '좀 잘 되어 있었다면 간병인을 쓰면서 구환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공부방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치매 초기였던 아빠에게 든든한 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나 애썼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내 뜻대로 흘러가지 못하니 작년부터 무기력이 찾아왔다.


올해 공부방이 어려워진 후,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야 할지, 새 뜻을 품어야 할지 밤잠 설치며 고민했다.

그러다 또다시 타로 앱에 나의 운명을 물어봤다.

"향후 2~3년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흔들렸고,

선택의 기로에서 그 선택을 남에게 맡기고 싶은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었다.


막연히 불안했기에 누군가에게 터놓고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시간.

하지만, 이제는 멈추고 싶었다.

운명이나 팔자라는 '남의 해석'에 의지하기보다,

그저 '내 마음'이 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2017년도에 썼던 낡은 노트를 펼쳐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10년 전, 누군가의 '생각이 현실이 된' 책을 읽고 적었던 ‘버킷리스트 5개’가 있었다.

5년이 지난 2022년, 그것을 다시 보게 된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시기 만났던 생각들로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과 그 5가지가 모두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 노트를 들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내 공부방 아이들에게

‘꿈을 외치게’하고, ‘꿈을 쓰게’하며, ‘미래를 꿈꾸게’했다.

그 노트 한 권이, ‘남의 해석’(타로)가 아니라 ‘나의 소망’이야말로 운명을 이끄는 힘임을,

내 삶으로 다시 깨닫게 한 것이다.



결국, 내가 놓쳤던 학업운, 큰아이의 영재고 운, 그리고 "돈과 관련된 직업만은 피하라"는

시어머니의 만류에도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옮겨 자신의 운을 꼬아 버린 아이들 아빠.

운을 가졌지만 그것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려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운이 좋든, 나쁘든 그것을 제대로 읽어내 중심을 잡고 '똑바로 사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을.



운명은 '지도'일뿐, '길'이 아니다.

지도를 탓하며 주저앉아 '팔자타령'을 하는 것은 '노예'의 삶이다.

불리한 지도(凶)를 손에 쥐고도, 묵묵히 '자신의 걸음'으로 '똑바로' 걸어가

마침내 '새로운 길'을 내는 것. 그것이 '주인'의 삶이다.



운이란 것 또한 해석하기 나름이며, 노력하는 삶의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나는 그 '주인'의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그 모든 시련을 겪고, 그 '끔찍했던 밤(官煞)'을 통과하며,

내 운명(命)에게서 받아낸 '가장 확실한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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