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와 관계의 지혜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나는 40년 된 친구를 끊어냈다.
그녀의 말에 아팠고, 쌓아온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저질렀다.
언젠가 후회할 줄 알았지만, 그저 피하고 덮어두고 싶었다.
최근, 이 낡은 상처가 다시 떠올랐다.
공부방에서 벌어진 '고등들의 반란' 때문이었다.
지금은 자매처럼 오순도순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땐 오랜 기간 누르고 있던 마음이 터져 나와 서로 변명하고 탓하며 감정적으로 뒤돌아섰다.
본인들의 예민함으로 상처받았을 동생들이 보이지 않는 언니들,
눈치 보며 함께 공부 못 하겠다고 나가겠다는 동생들.
학교에서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함께 운동하며 배려, 협동, 관계의 중요성을 수없이 얘기했건만,
난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40년 지기 친구와의 일이 떠올라 마음이 힘들었다.
어른인 나의 문제로 아이들 관계까지 끊겨버린 것에 대한 자책감도 밀려왔다.
그때, 나는 물었다.
'왜 우리는 관계를 망치고 나서야 후회할까?' 답은 의외의 곳에서 보였다.
딸아이의 글이었다. “너무 참지 말고, 터트리자.”
친구의 짜증에 감정을 쌓아가고 있는 딸.
그건 감정을 내색하지 못하다 터져버린 내 모습이었다.
결국, '말'이었다.
사랑하는 방법이 서툴러 꼬여버린 것들.
그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말'이었다.
돌이켜보면, 40년 지기 친구와의 관계를 '감정'으로 망쳐버렸던 바로 그 무렵,
나는 정반대의 '성공'을 경험했었다.
두 번째 수술을 받을 때, 의사를 바꾸려 찾아갔지만
그는 스승의 환자라며 '그들만의 규칙'을 내세워 거절했다.
너무 당황하고 눈물이 났지만, 문득 '히포크라테스 선언문'이 떠올랐다.
울음을 참고 차분하게 단 한마디를 건넸다.
그 말이 의사를 사로잡았고, 문제는 단번에 해결되었다.
감정이 아닌, 나의 '권리'와 '생각'을 '차분한 말'로 전했을 때였다.
나는 깨달았다.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마음을 사실, 생각, 감정으로 구분해 보는 연습.
불편한 감정을 잘 다스려 대화하는 연습.
이 깨달음은 최근,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격앙된 선생님 앞에서 예전의 나였다면 입을 닫았겠지만,
나는 심호흡 후 연습한 대로 나의 '사실'과 '감정'을 전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사과했고, 문제는 평화롭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지금 공부방 아이들의 관계는 꼬일 대로 꼬여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사실과 생각과 감정을 구분해 글로 적기 시작했다.
우리는 종종 사실이 아니라 '너를 위한다'는 이유로 오해를 쌓을 만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 감정의 더미 속에 자신을 가둔다. 내 책임이라 인정하면서도 마음 깊숙이 올라오는 억울함.
나부터 이런 생각들을 멈춰야 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이 고민이 나를 위한 선택인가, 아이들을 위한 선택인가.
품을 것인가, 보낼 것인가.
말에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른 '때'가 있다.
때론 꾸짖음, 때론 안아줌.
아이들에게 이제는 진짜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잘 전하며 남과 잘 소통하는 법.
사실, 생각, 감정을 구분해 올바른 결정을 하는 법.
남과 잘 화해하는 법.
여러 입장에서 생각해 공감 능력을 기르는 법.
공부방에 분 이 '관계의 바람'은 전화위복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터질 일이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품자. 아이들을 건강한 관계로 다시 되돌리고, 성장시키자.
나의 40년 지기 그녀에게도 이 넉넉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음을 이제 안다.
얼마 전, 그녀의 엄마가 건네신 "기다릴게".
재촉도, 해명도 없는 그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깊이 열 수 있는지 나는 그제야 배웠다.
그 어른의 지혜 덕분에 2년간 도망치듯 닫아두었던 내 마음을 열 수 있었듯,
이제는 나도 아이들을 기다리고, 품어주려 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사랑,
증명하지 않아도 믿어주는 태도.
어쩌면 관계란
그런 말 한마디를 배울 줄 아는 어른이
곁에 있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 어른의 지혜 덕분에 2년간 도망쳤던 내 마음을 열 수 있었듯,
나도 아이들을 기다리고 품어주리라.
친구란
‘오랜 시간’을 견뎌낸 사이가 아니라,
‘귀한 시간’을 함께 가꾸는 사이.
나쁜 기억 대신 좋았던 순간을 ‘말’로 꺼내어
서로의 시간을 귀하게 만드는 태도.
관계는 기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말로 다시 불려 나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그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단 하나의 ‘관계의 지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