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키워도 똑같다?

나무가 가르쳐준 기다림

by 고백맘


책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무를 아프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조급함’이라고. 그냥 두어도 될 나무에 약을 치고, 가지를 자르고, 영양제를 놓고, 거름을 듬뿍 주어 결국 나무를 병들게 만든다고. "왜 안 되냐", "뭐가 문제냐"라고 조급하게 따질수록 나무는 소리 소문 없이 죽어 간다고 한다.



다시 육아를 하며, 큰아이처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제일 잘한 건, 어렸을 때 사교육을 시키지 않은 거였다. 딸아이가 열 살이 되기 전까지 10년 동안은 그 믿음에 흔들림이 없었다. 영어 듣기만 시켜도, 한글책만 읽혀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믿음이 무너졌고, 지금은 사춘기가 된 딸아이의 생활을 보면 안쓰럽다. 책 읽을 시간은 나지 않고, 밤마다 숙제를 쳐내느라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늦다. 어디서부터 리듬을 찾아줘야 할지 부모로서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아이를 보는 내 시선이 곱지 않다.

왠지 모르게 조급하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 가지를 쳐야 할지, 뿌리를 더 단단히 내려야 할지 알면서도,

'결과'를 확인해야 하는 시기만 되면 조바심이 난다.

왜 안되냐고, 뭐가 문제냐고 따지며 이것저것 행할수록,

사람도 나무도 시들시들 병드는 건 같은 이치인 것 같다. 고개가 숙여졌다.




학원만 돌며, 나쁜 음식만 먹는데, 안개처럼 뿌연 뇌를 갖고 무슨 공부가 될까.

PC방을 독서실처럼 다니며,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큰아이를 보며 고민이 깊었기에 무엇이 중요한지 알았다.

체력이 안 돼도, 마음이 흔들려도, 공부가 되지 않기에 체력을 키우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운동 6년 차.

그나마 운동을 했기에, 책상 앞에 앉아 있었기에 다들 이 정도 버텨 내지만, 이제는 재도약의 시기였다.



그런데 딸아이는 정반대였다.

오빠는 공부에 손을 놓아서 애를 태웠고,

딸아이는 공부 압박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신의 몸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전쟁의 흔적은 아이의 몸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오빠 때 체력이 약한 아이에게 영양제만 검색하던 '해결쟁이' 엄마가 어느새 또 튀어나와 있었다.


조숙증 진단을 받고 원인을 몰라 호르몬치료를 병행했고, 여드름이 온 얼굴을 덮자 화장품, 연고, 피부에 맞는 관리 방법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 겨우 하나 불을 끄고 나니, 생리 기간이 되자 변비가 왔다. 집밥을 먹고, 음식 관리를 하는 아이지만 변비가 왜 온 것인지 이유를 몰랐다. 그러더니 기어코 위장 장애가 생겼고, 시험 기간이 되거나 잠자는 시간이 늦어지면 급체를 해서 한의원에 가 침을 맞고 위장약을 먹어야 했다. 그러다 뒤늦게 발견한 평발을 보고, 깔창을 주문하고 평발 교정 스트레칭을 찾아서 꾸준히 하게 했다. 아이의 문제가 하나씩 터질 때마다 그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허겁지겁 해결하면서 2~3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방법'이 아닌 '원인'을 찾고 싶었다.



열심히 키운다고 키웠는데, 다시 키워도 똑같을까?

왜 나의 바람과 다르게 사춘기에는 예상 못 한 상황을 겪으며

아이와 관계가 힘들어지는가.




아픈 엄마이기에, 혹시 엄마 없이 살아갈 때 오빠처럼 무너지지 않고,

잘 살아가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들여주기 위해 운동을 시키고, 집밥을 먹이고, 성실, 노력, 끈기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노트에 그려진 그림들과,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를 진심으로 부러워하며

그 친구와 가깝게 지내는 아이를 보면서, 그 마음에 그토록 숨어있던 '불씨'와 밖으로 터져 나오고 싶어

하는 '표현욕구(끼)'를 발견했다. 수학 선행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트레스와 욕구를 누르며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아이의 마음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내려놓아야 될 때임을 깨달았다.



10년 전, 오빠와 사춘기 갈등을 하던 어느 날, 아이에게 책임감을 안겨 주고 자기 길을 가게 했듯이,

이제는 딸아이에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는 게 이 아이가 스스로 '숨 쉴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또 다른 불이 되어, 아이의 몸과 마음을 남김없이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끈기를 길러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는 자기 몸을 태우고 있었다.



좋은 습관을 길러 줬기에 아이의 선택을 믿고,

아이가 가는 발걸음 하나하나를 기다려 주는 게 엄마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나무를 잘 키우는 방법이 ‘품 안에 두지 않고 거리를 두되,

늘 지켜보면서 나무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아이들도 그렇다.

때와 시기가 있다.



바로 잡아줘야 될 시기, 지켜봐야 할 시기가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속 구절처럼,

"나무는 씨앗의 비밀을 끝까지 살아낼 뿐 다른 걱정은 그의 걱정이 아니다."

나무는 망설임 없이 뻗어가는데, 오직 인간만이 조바심에 씨앗을 들춰본다.

나무가 터득한 지혜는 '때에 맞는 성장'에 있었다.


햇빛과 비를 '힘껏' 받아들이되, '지금 쓸 수 있는 에너지만큼만' 자란다.

봄에는 새순, 여름에는 잎, 겨울에는 뿌리에 에너지를 집중하며 수렴하는 것.

이 반복을 통해 나무는 자신의 때를 알고 성장한다.


나무를 처음 키워 본 사람들은 말한다.


“참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게 나무 키우는 일이요, 나무처럼 까다로운 것도 또 없을 것”이라고.

어찌 자식 키우는 마음과 이리도 같을까.


아이들도 '때가 차서' 스스로 피어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너무 애쓰지 않아도, 결국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가 있을 거라는 그 믿음으로 묵묵히 지켜보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임을 깨달았다.


나무를 심는 이가 10년, 20년을 앞서 생각하며 기다리듯,

자식을 키우는 부모도 그 기다림으로 기다려야 된다는 것을 나무에게서 배웠다.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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