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위의 기도

전쟁 같은 밤, 평온히 잠든 딸아이

by 고백맘

전쟁과도 같은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딸아이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그 고요한 얼굴을 보며, 겨우 마음을 추슬렀다.

매일 혼자 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는 아이지만

그날만큼은 아이를 먼저 재우고 곁에 조용히 누웠다.

이 끔찍한 밤을

나 혼자 겪어서 다행이었다.


또한, 공부방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일이 벌어진 것도

그나마 감사한 일이었다.

두려움과 벅찬 감정 속에서

혼란스러운 밤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도했다.





딸아이는 태어나서 20개월이 될 때까지 밤마다 몇 시간씩 울었다.

낯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작은 불편도 예민하게 토해내던 아이.

집안 형편마저 기울어가던 그때, 이 아이를 온전히 키워내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노력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모든 에너지를 탈탈 털어가며 아이를 지켰다.


아이의 불안한 리듬에 모든 것을 맞추며 예측 가능한 하루를 선물했다.

아이를 안고 달래며, 울음을 읽고, 마음을 해석하듯 들여다보았다.

아이의 하루를 함께 걷고,

같이 자고, 먹고, 놀며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순해졌고, 세상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애착을 가진,

무엇보다 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보았다.

끔찍한 비극의 소음 속에서도 미동 없이 평화롭게 잠든 지금의 아이를.

그리고,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나의 모습을.


너무나도, 똑같았다.

만약 내가 책을 쓴다면, 그 시작은 바로 이 밤의 이야기일 것이다.

가장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구김살 없이 자라난 아이의 이야기.

전쟁터 한가운데서도 평온히 잠들 수 있었던 아이의 비밀.


그리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모든 소음을 막아서는 방패가 되었던 한 엄마의 기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엄마아빠의 온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


그렇게 키워낸 아이가,

오늘도 무너지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아이의 평온이, 나의 치열했던 시간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나를 키운 건, 동네 도서관이었다"

-빌 게이츠-


나의 아이들을 키운 건, 동네 도서관과 산이었다.

가난 속에서 던졌던 물음은 늘 하나였다.


“돈 없어도 잘 키울 수 있을까?”

세상은 돈이 있어야, 좋은 학군에 살아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하지만 사랑과 불안을 혼동한다.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으로 만들려는 욕심을,

나의 불안을 아이를 통해 해소하려는 이기심을,

아이의 미래를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집착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착각하곤 한다.

진정한 사랑은, 아이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임을.

아이의 길을 대신 닦아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길을 가더라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의 근육을 단련해 주는 것임을.

나는 나의 아이들을, 그리고 무너져가던 수많은 아이를 온몸으로 끌어안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이를 성장시키는 것은 학원이 아니라,

건강한 몸과 마음이라는 것을.


둘째와 열한 살 터울이 나는 큰아이.

대학 입학을 앞두고, 녀석이 집을 떠나던 날이었다.

아이가 울며 말했다.


“난 누구 믿고 살아? 엄마도 아프고, 아빠도…”

“너 자신을 믿고 살아. 엄마가 다른 건 몰라도, 그 힘 하나는 길러줬어.”


그렇게 단호히 말하며, 세상 밖으로 밀어냈다.

그 후로 아이는 손을 벌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활했다.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제 생활을 꾸렸고, 어떻게든 앞가림을 해냈다.


그런데 그 대견함이, 되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대학생인데도 멋 한번 부리지 않고, 목이 다 늘어난 낡은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떨어져 살며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아이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옷 필요 없어. 돈 필요 없어. 나, 괜찮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보았다.

나의 낡은 희생이, 아이의 단단한 자존감으로 대물림되었음을.

어쩌면 하늘은 이 캄캄한 운명의 밤바다를 건너가라며,

두 개의 보석을 손에 쥐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이 빛만 보고 길을 잃지 말라고.


그날 밤, 잿더미 같은 절망 속에서도,

다시 그 두 개의 빛을 보며 숨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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