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한번 안아 주면 안 돼요?
공간을 옮기고, 묵은 짐을 정리하며 가슴을 뜯던 12월의 어느 밤.
"이제 끝이구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았고,
내가 걸어온 길이 그저 허망한 발버둥처럼 느껴졌다.
올해 많은 아이들이 떠났다.
번아웃이 왔다.
의욕이 사라졌다.
그런데,
멈춰버린 줄 알았던 나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졸업식 날 아침.
휴대폰이 울렸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상을 받게 된 아이의 문자 한 통.
그 짧은 문장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밤잠 설쳐가며 뿌렸던 믿음의 씨앗이
한 아이의 인생에서 첫 번째 마침표에
가장 빛나는 훈장이 되어 돌아왔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그건 단순한 예의가 아니었다.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마다
뿌려준 '믿음'이라는 거름이
꽃을 피웠다는 선언이었다.
또, 초등 1학년부터 키우다시피 한 아이.
내년이면 고3이 된다.
그 아이가 가져온 1.0의 성적표.
"선생님, 1.0 받았어요!"
운동하는 공부방에서 땀 흘리며 기른 '엉덩이 힘'과 '마음 근육'이 만들어낸 정직한 결과 증명서였다. 그 숫자가 외치고 있었다.
10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숫자로 돌아왔다.
사춘기로 공부 의욕이 떨어진 아이가 공부방을 잠시 쉬겠다고 인사를 하러 왔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마지막에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한번 안아주면 안 돼요?"
순간 멈췄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길고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그 찰나의 순간,
아이의 온기가 나의 차가운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억울함과 번아웃으로 멈췄던 심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별이 아니라,
가장 고귀한 위로였다.
전교 1등 성적표보다
더 뜨거웠던 깊은 포옹.
나의 가슴을 녹여놓고,
아이는 떠났다.
문자 한 통,
성적표 한 장,
깊은 포옹 한 번.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이들이 건넨 말은
단순한 감사가 아니었다.
"선생님, 이제 그만 일어서세요.
힘내세요."
12월의 한복판에서 아이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올해 고교학점제가 되면서 많은 아이들이 내 곁을 떠나갔다.
학교로, 학원으로.
처음엔 그것이 실패인 줄 알았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부족했나?"
그런데 이제 깨닫는다.
그들은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빛을 채우고,
이제 스스로 빛날 준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이다.
떠나간 아이들이 실패가 아니라, 완성이었다는 걸.
운동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중1이었던 아이들이 올해 졸업했다.
그 아이들에게 책을 내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지키지 못했다.
번아웃이 왔고,
모든 것이 무너진 것 같았고,
약속을 지킬 힘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포옹이 나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다가오는 2026년에는 새 희망을 꿈꾼다.
체력을 키워 사춘기 아이들을 성장시킨 이야기를
이제는 더 많은 엄마들에게 전하려 한다.
아이들이 내준 길 위에서,
펜을 들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아주 작은 틈으로 햇살이 스며드는 것처럼,
지금 나에게 다시 살아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12월은 끝이 아니었다.
12월은 새로운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