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관계에서 자란다

성적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들

by 고백맘


큰아이를 과학고에 입학시키고 보니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처참했다.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있었고, 학년 대표 선거는 아이들의 이름을 빌린 어른들의 정치판 같았다.

학업 스트레스로 새벽마다 우는 아이의 전화를 받느라 밤잠을 설치는 엄마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큰아이는 그곳을 ‘즐기며’ 다녔다.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도 그건 자신의 탓이라 했고,
친구들에게 배울 게 많아 적성에 맞는 곳이라고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꼭 10년이 지나서였다.

대학원 원서를 쓰던 아이가 조심스럽게 털어놓은 뒤늦은 고백 때문이었다.


“중등 시절 2년간 들었던 그 철학 수업이 제 성장의 토대가 됐어요.
그곳에서 친구들과의 관계, 배려하는 법을 배웠거든요.
그래서 상급 학교에 가서도 사회생활이 덜 힘들었어요.”



그 말이 유난히 가슴에 박힌 이유는 그 수업이 한때 우리 모자의 ‘매일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춘기였던 아들은 자만심과 불안이 뒤섞인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였다.

똑똑하다는 말만 듣고 자라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8명이 한 팀이 되어
한 사람이 잘못하면 모두가 혼이 나는 구조 속에서 매일같이 부딪혔다.


나는 지쳐갔지만 그 수업만큼은 끝내 포기시킬 수 없었다.

어쩌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 결국 실패의 시간을 건너야 했던 아이 아빠의 뒷모습이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훈련만큼은 아이에게 꼭 필요하다는 이유 없는 확신이 있었다.



10년이 지나 돌아보니 그 수업은 단순한 지식 교육이 아니었다.


핀란드에서는

시험 성적보다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고 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아이를
교육의 목표로 삼는 나라.


나는 그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이미 현장에서 보아왔기 때문이다.
성적이 조금 부족해도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아이들은 끝내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사춘기 시절,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며
가슴 깊이 꽂혔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식을 주입하는 학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들었던 수업.


두 번의 큰 수술을 거치며
몸이 먼저 삶의 유한함을 배웠을 때,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 아이뿐 아니라
공부방 아이들에게도
꼭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걸.


더 많이 아는 법이 아니라,
남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
혼자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법.


그것이
내가 공부방에서
그토록 가르쳐 주고 싶었던
‘삶의 태도’였다.



큰아이가
그 혹독한 철학 수업을 통해 관계를 배웠듯,

공부방 아이들도
함께 운동하고,
함께 걷고,
함께 부딪히며
그것을 몸으로 배우길 바랐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작은 연결점이 되길 바랐다.


10년 만에 들은 아들의 고백은

내가 공부방에서 하려 했던 일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교육이었음을
뒤늦게 알려주었다.



함께 성장하는 공부방을 만들고 싶었다.
뜻을 세웠고, 마음을 나눴다.

남의 밭까지 갈아엎으며
자식 농사만
10년째 짓고 있다.


아마 이 농사는

수확보다 기다림이 더 긴 농사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누군가의 인생에
기다려주는 어른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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