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이만 보의 노동
두 번째 인생은
집이 무너지며 시작됐다.
집에 물이 샜다.
몇 년 동안 미뤄두었던 보일러 공사를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경제적인 여건도,
집 안의 짐을 전부 빼야 하는 현실도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수습을 위해서는 어쨌든 해야만 했다.
일이라는 게 그랬다.
한번 터지면 그다음은 선택이 아니라 흐름이 된다.
모든 일은 저지르면 저지르는 대로 흘러간다는 걸 또 한 번 실감했다.
돈 문제도 이리저리 빌려 급한 불은 껐다.
수리를 시작하면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소한만 하기로 했다.
바닥만 고친다.
예쁘게 고치고 싶은 마음,
하나씩 바꾸고 싶은 욕심은 눈 딱 감고 외면했다.
손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수리 날짜가 다가오자 가장 큰 문제는 짐이었다.
이삿짐 업체 견적도 받아봤지만, 20년 넘게 쌓아온 낡은 것들까지
모두 옮기고 싶지는 않았다.
결혼 후 집에 모은 것들의 대부분은 아이들 책이었다.
책을 사는 데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기에
벽면을 따라 빼곡히 쌓인 책들.
버리고,
정리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집 근처 단골 커피집 사장님의 딸에게도,
지인의 친척에게도
책들은 그렇게 흩어져 갔다.
책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건 단순한 수납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껏 아이들 위주로 살아온 삶을 조금 내려놓고,
내 공간을 꾸리고 내 삶을 살겠다는 의지에 가까웠다.
이 결단까지 오래 걸렸다.
내 아이와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손때 묻은 책들.
한 권 한 권 읽히며 시간을 함께 쌓아온
내 지난 삶의 정리였고,
첫 번째 인생의 전부였다.
하지만
나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은 채
무심히 떠나간 사람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마음 한편에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딸의 사춘기를 지나며 생각했다.
엄마의 행복을 보여주고 싶다고.
결국 아이는 엄마의 말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을 보고 자란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리는 끝났고 이제 이사가 남았다.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운 일이었다.
짐을 뺄 때는 큰아이가 도와줬지만,
공부방에 있던 짐들을 집으로 옮기는 상황에서
이삿짐 업체에 맡기기엔
결국 버릴 것과 정리할 것을 직접 마주해야 했다.
혼자 짐을 싸기로 했다.
용달 아저씨를 불러
나르는 일만 맡기고, 정리는 모두 내 몫이었다.
짐은 생각보다 많았고, 어디선가 계속 쏟아져 나왔다.
버릴지, 남길지. 판단의 순간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모든 선택은 결국 내 몫이었다.
이 운명 같은 정리의 시간에 곁에 있어준 건 딸이었다.
학교 체험학습을 이틀 내고 함께 짐을 싸고, 함께 풀었다.
주변에서는 말했다.
“왜 이런 힘든 일을 시켜?”
“아이한테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독한 엄마네.”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이 경험이 아이의 마음에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생 기억할
엄마와의 추억이자,
엄마의 삶을 가까이에서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엄마, 이만 보 찍혔어.”
하루 종일 짐을 나르고, 옮기고, 잔심부름을 하다 보니
만보기에는 이만 보가 넘게 찍혀 있었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짐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바로 내 삶이구나.
딸의 물건도 직접 정리하게 했다.
“이거 버려?”
“응, 버리자.”
“근데 아까운데…”
쉽게 샀던 것들.
정리하지 않고 쌓아둔 것들.
딸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쳤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함께
사인펜과 볼펜을 버리고,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고,
물건을 나눠주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배웠다.
물건을 쉽게 사지 말 것.
자주 정리할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것.
삶에는 이렇게 강제로 찾아오는 정리의 시간이 있다.
집에 물이 새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공사였지만,
결국 이 시간은 내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20년간 쌓아온 것들.
아이들 위주로 살았던 시간.
공부방에 쏟아부었던 에너지.
그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나는 깨달았다.
이제는 내 삶을 살아야 할 때라는 걸.
운명은 나를 강제로 이동시켰고,
나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나의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