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맘의 '괜찮아'
한강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 질 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고백맘 괜찮아
세상의 낯섦을 울음으로 토해내던 널
안고, 업고, 어르며 긴긴밤 지새우다,
몇 해 전 떠난 엄마 생각에 나도 울고.
몇 해 뒤 아플 엄마 걱정에 너도 울고.
엄마 뒤 숨던 어린 날 두고 어디 갔냐고.
엄마 품 안긴 어린 널 두고 어디 가냐고.
물어볼 곳도, 답할 곳도 없고.
물어볼 수도, 말할 수도 없고.
엄마 이제 없다고
엄마 언제 오냐고
캄캄한 하늘 보며 서러워 너와 나 목놓아 울었다.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때 이른 걱정의 울음을,
괜찮다고, 괜찮다고 달래 보았다.
잘 계실 거라서
곧 오실 거라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두려운 울음을 지웠다.
지켜볼 엄마 생각에
견뎌낼 엄마 모습에
너의 웃음에
나의 미소에
너도 웃고, 나도 웃고.
그렇게 한 걸음씩 홀로 서며,
그렇게 한 발자국 내디디며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강의 ‘괜찮아’ 시를 보며, 둘째를 키우며 나를 달랬던 마음이 생각났다.
나이 마흔에 ‘선물’과도 같은 둘째를 낳았다. 당시 집안에 반짝 호경기가 찾아왔고, 큰 아이 10살쯤, 아이를 다시 키우고 싶은 여유도 생겼다.
늦둥이를 키우는 형님네를 보며 부러움에 엄두를 냈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는 건 몸이 약한 나에겐 무리였다.
몸에 있는 영양분 탈탈 털리고, 회복이 되지 않은 몸으로 돌봐야 했다.
예전과 달리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신랑은 늦고, 뛰어갈 친정은 없었다.
우는 아이 달래며, 큰아이 밥 차려 주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명절이면 양가를 오가며 제사를 지냈다. 달달한 믹스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며, 아장아장 걷는 작은 아이 뒤를 쫓으며 무기력한 날을 보냈다.
꽃구경 한번 못하고 봄을.
땀범벅인 채 아이를 안으며 여름을.
창문 너머 흩날리는 낙엽을 보며 가을을.
방 안에서 아이와 씨름하며 겨울을.
그렇게 계절이 몇 번이나 지나갔다.
그러다가 아팠다.
몸의 이상을 느끼고 찾아간 병원에서 암진단을 받았다.
3살 아이 두고, 수술받던 캄캄한 마음이 생각났다.
하루아침에 엄마가 없는 아이는 엄마 좀 찾아 달라고 열병으로 아픔을 토해댔다.
난 나의 엄마처럼 일찍 죽지 않고 너와 오래 같이 할 거라 다짐하며 그 시기를 견뎠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
그 아이는 자라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가방 문 잠 궈~”
서로가 애탔던 우리는 이제 없다.
정신줄 놓은 아이와 맞서며 용감히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