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내 품에 안긴 또 한 명의 아이
치매 아빠 육아기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지.."
차 뒷좌석에서 동요 '오빠 생각'을 부르는 사람은 바로 80세 아이가 되어 내 품에 안긴 나의 아빠다.
"아빠~ 오늘은 기분이 좋으세요?"
"그래그래.. 오늘은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아. 뜸북뜸북..~"
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어릴 적 '어린 내'가 생각났다.
엄마아빠 몰래 노래자랑대회 원서를 넣고 "오빠 생각'을 불러 최우수상을 받았던 철없던 꼬마.
그 꼬마는 이제 두 아이와 나를 낳아준 아빠까지 돌보며 집의 중심 역할을 해내는 어엿한 중년이 되었다.
아빠의 저 노래는 어떤 연유에서 얼마 남지 않은 기억 창고에 저장된 걸까?
혹시,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노래 내가 불렀던걸 알아?"
"몰라~ 너희 언니는 피아노를 잘 쳤고, 너는 노래를 잘 불렀지. 너희 엄마는 요리를 잘했고"
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하셨고,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으셨던 아빠.
박봉 월급으로 삼 남매를 키워내랴 알뜰하게 살림을 똑 부러지게 살아내신 엄마.
그리고, 우리들.
아빠는 그때의 우리를 기억하는 게 분명하다.
그 시절,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 속 아빠는 집에 들어오실 때 양손 가득 먹을 것을 사 오셨고, 우리는 하던 공부 그만하고 이불속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웠다. 잔소리하는 엄마, 이런 우리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태산 같은 아빠. 다섯 식구의 평범하고 소박한 저녁은 그렇게 흘러갔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시끌벅적한 집이었다. 저 노래는 오늘따라 40년 세월의 흘러간 깊이만큼 구슬프게 들렸다.
그리고, 흐릿해져 가는 기억 속에서 다시 볼 수 없는 한 사람, 엄마.
이제 또 한 명이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첫째 12살에 둘째를 낳고,
둘째 12살에 나를 낳아준 아빠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5살 무법자가 되어 철커덕 내 품에 안겼다.
작년, 난 10년만에 암이 재발해 재수술을 받았고, 딸의 투병 소식이 충격이었는지 몇 년간 약을 먹고 일상을 유지하던 아빠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길을 잃어버리고, 조금만 마음대로 안되면 불같이 화를 내고, 망상증 치매 환자가 되었다.
난 수술 후, 회복할 틈 없이 아빠의 보호자가 되었고 위치 추적 앱을 켜고 뒤를 쫓았다.
모든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조차 힘든데, 아빠까지 돌봐야 되는 상황까지 오니 눈물밖에 나지 않았다.
운다고 달라질 상황은 없었다.
주위에선 요양원을 권하며 아빠의 간병을 극구 만류했지만, 도저히 나 자신이 허락해 주지 않았다.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뚝 떨어져 자신의 생활을 잘해 가는 언니, 동생과 달리 옆에서 걱정거리만 안겨준 딸이었다.
3년 전, 공부방 아이들과 '몸, 마음, 정신의 힘 키우기'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아이들한테 선포했다.
"선생님.. 책 낼 거고, 사춘기 전문 강사가 될 거야. 나도 변하고, 너희들도 변하자! 우리 한 번 해 보자!"
그 무렵, 치매약을 드시기 시작했고 더 기억을 잃기 전에 당당한 딸이 되고 싶었다. 프로젝트로 아이들은 변했고, 성장했지만 나는 여러 일들을 겪으며 마음먹었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빠까지 아프니 무언가를 하기엔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공부방이며, 육아, 살림등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했고, 내 몸까지 챙겨야 했다. 혼자 애쓰고 살아온 지난날의 시간으로 재수술까지 한 몸인데, 또 긴장하며 살아야 했다. 아빠의 간병은 큰 복병으로 다가왔고, 수술 후유증으로 목소리까지 나오지 않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니 공황 증상은 더 심해졌다. 꿈을 찾아 무엇을 하기엔 내 일상은 또 멀리 도망갔다.
"너무 바빠서 안 되겠어."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달고 살아온 게 후회되고, 놓치고 나니 보이는 것이 있었다.
'왜 난 매번 놓쳐야 보일까?' 한탄스러운 마음만 들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아이들과 명상하는 숲으로 찾아갔다. 우리 동네엔 도로 하나만 건너면 큰 산이 있다. 자연의 소리만 들리는 이곳에서 내 마음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헤쳐 나가야 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천천히 호흡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 사이로 내리쬐는 한 줄기 빛이 보였다. 공부방 프로젝트 포스터 카피 문구가 떠올랐다.
"나도 당신도
누군가 한 줄기 햇살이 될 수 있어"
'아빠는 지금 나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해'
치매 환자와 아이는 같다고 하니, 육아만 23년 차, 또 20여 명의 아이들의 제2의 엄마로 사는 내가 아빠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동안 여러 고난을 겪으며 다져진 헤쳐낼 힘과 마음으로 이 시련 또한 받아들였다.
건강한 식습관, 규칙적인 수면, 운동으로 일상을 회복하고,
필요한 영양제와 한약으로 기력을 보충하고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또, 고집부리고 말썽 피워도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된다.
알아듣지 못하는 아빠의 말을 천천히 들어주며 둘째 키울 때처럼
한결같은 마음과 눈빛으로 지켜봐야 한다.
"아빠 옆에 제가 있을게요. 걱정 마세요"
'아빠는 나에게 추억을 만들 시간을 선물했어. 지금은 효도할 시간이야.'
이렇게 마음먹고, 6학년 둘째를 데리고
아빠집을 오가는 두 집 살이를 시작으로,
세아이의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