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애 볼래? 돈 벌래?

고백맘의 선택과 집중

by 고백맘

첫 수술 후, 겨우 몸을 회복한 다음 생활비를 벌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암환자라서 몸에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일을 해야 했고, 팔러 다닐지, 차려야 될지,

어디 들어가야 될지 수없이 고민했다.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10년 전에 다닌 회사 경험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뭐 하고 살았지? 건강도, 능력도, 돈도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자는 아이들 보며 미안했고, 뜨거운 눈물만 흘렸다.

뭘 해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깊어갔고,

이제껏 뭐 하고 살았는가에 대한 회의도 밀려왔다.

새벽의 또렷한 정신은 뾰족한 대책도 생각해내지 못했고 불안감만 증폭시켰다.


할 수 있는 게 뭘까?

살면서 가장 자신 있는 일은 뭘까?

이제껏 주부로 살며 제일 관심사는 무엇이었나?

‘나’에 대해 생각했다.

결혼 후 제일 많이 한 일이 아이 책 사서 읽어 주는 일이었고,

방방마다 빼곡히 책으로 채워졌다.


제일 자신 있는 일, 육아!

좋아하는 건 아이들과 가르치는 것.


결혼 전, 압구정동 점쟁이 말도 생각났다.


"넌 무조건 ‘교사’야. 이쪽으로 가야 돼."


결혼하지 말고, 교사의 길을 가라고 했던 점쟁이의 말.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이 길이구나.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이 아니라,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일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었다.

내 아이 키우는 마음으로 남의 아이들을 키워보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리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탓하며 세월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때 부모님, 좋은 환경, 일.

모든 걸 갖췄지만 항상 불평하던 '어린 내'가 생각났다.


생각을 달리하고 마음을 고쳐먹으니, 상황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따뜻이 살 집이 있고,

내 아이와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며 의지하는 아이들과 엄마들.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한 명의 아이들이라도 바르게 자란다면,

난 이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내 삶의 자리에서 소중한 의미와 책임이 무엇인지 물었다.




생각해 보니 의외로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욕이 불끈 넘쳤다.

그간 큰 아이 키우며 관심사가 ‘교육’에만 꽂혔고 육아서,

유행하는 엄마표 시리즈들을 죄다 섭렵했을 때였다.


큰 아이는 ‘타고난 머리’, ‘엄마의 정보력’, ‘과외비 대주는 할아버지’ 덕으로

가정경제의 위기를 무사히 피했다.

이것이 이 ‘아이의 운’이겠지.

또 내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뒷바라지’일 거란 마음으로 떠나 보낼 준비를 했다.


그 시절에도 의대 열풍이었기에 욕심 같아서는

의대 쪽으로 밀고 싶었지만 형편도, 아이 상황도 그게 아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고, 함께 고민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니

아쉬워하지 말고 과감히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아이는 수학, 과학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이과 스타일이었다.

과학고만 들어가면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며

신나게 학교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 '과학고'를 목표로 정했다.


‘공부방’과 ‘과학고’ 선택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했고

살고 있는 아파트도 공부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공간을 나눴다.


동네 언니동생사이로 지내던 사람들이 아이를

한, 두 명씩 맡겼고, 공부방은 4명으로 시작했다.

돈이 필요했지만 돈에 연연하기보다

좋아하는 일, 아이들이 잘되는 방향으로 공부방을 운영했다.


주부로 살았을 때와 일을 하며 육아하는 건 많은 차이가 있었다.

환자라서 건강을 위한 집밥을 만들어야 했고, 운동할 시간도 필요했지만,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그리 많지 않았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고작 3시간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저녁밥까지 준비하고, 운동하며, 쉬는 타임으로 사용했다.


어떤 날은 집안일 때문에 시장 보기, 어른들 챙기는데 시간을 쏟았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외할머니가 살아 계셔서 할머니집에도 찾아봬야 했고,

어쩌다 한 번이라도 아빠 음식이라도 챙겨드려야 했다.


‘3시간을 활용하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수업도 일찍 시작하고 7시쯤이면 마무리가 되었다.

저녁 먹고 치우면 8시. 체력의 고갈을 느끼며 아이를 겨우 챙긴 후,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나를 위한 1~2시간을 쓰지 않으면

막막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책이라도 읽고, 뭐라도 끄적이고 있으면 그 순간만이라도 잊었다.

책은 나쁜 생각을 피할 수 있는 오두막이었다.


집밥, 운동, 새벽 공부, 공부방, 육아.

여기에 초점을 맞추니, 청소, 빨래, 정리정돈, 꾸미기 등등 '포기' '집중'할 것들이 가려졌다.




애 볼래?, 돈 벌래?


육아의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 '아이'를 선택했다.

'너희 집 형편상 네가 지금 이럴 때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형편상, 당장 몇 푼이라도 버는 게 도움 될 수 있지만

아이가 자라서 자기 역할을 못 해나간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를 알고 있는 만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힘들지만 곁에 있어주고,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지켜 주고 싶었다.

오빠를 키우면서 육아 방향을 그려놓은 상황이라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지금 최선을 다하자’라는 마음으로 힘든 시기를 버텼다.


육아 집중기는 10세 전이다.


이 시기에 아이와의 관계, 습관, 학습적인 기초 등을 잘 닦아 놓으면

그 이후는 아이의 몫이다.


그때까지 조금 더 집중하자.





밥 할래? 청소할래?


이 질문에 대한 선택에서도 '밥'을 선택했다.

한 번 외식으로 5~6만 원이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또, 외식하러 오가는 사이 아이는 불필요하게 몇 시간을 쓰게 된다.

돈, 시간, 건강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엄마의 집밥’ 습관이 필요했다.

집밥을 먹고 건강을 지키고 돈과 시간을 아껴 건강한 식습관을 지킬 수 있었다.


깨끗이 정리정돈된 집에서 살고 싶지만 청소, 빨래하는데

에너지를 쓰다 보면 자연스레 체력 고갈을 느꼈다.

가진 에너지가 남들보다 작은 상태에서 이것저것 다 하며

‘슈퍼우먼’으로 살게 아니라, 선택하고 집중해서 시간을 아껴 살아야 했다.


선택과 집중은 육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육아하는데 돈, 시간, 에너지를 무한정 쏟을 수 없었다.

건강도 지켜야 되고, 일도 하는 상황이라서 시기적으로 ‘육아 집중기’

언제 두면 좋을지 고민했다.


3살까지 엄마와의 안정된 애착으로,

4~7세 때 넘쳐나는 호기심을 꺾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고,

책과 자연을 접해 10살 전까지 학습 및 생활 습관을 잡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학원? 엄마표 학습?

엄마표 놀이, 엄마표 학습, 학원 등 수많은 선택과 결정에서

아이에게 맞는 육아법과 학습법을 고민했고 형편에 맞게 키우고자 노력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중요한 건 “돈”, “유명 학원”, “머리”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둘째는 ‘마음’과 ‘체력’이 단단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나누고,

자연스러운 영어 노출을 위해 환경을 만들어주고,

수학 교구를 이용해 수감각을 익혀주고,

맛있는 집밥으로 건강을 챙기고,

엄마랑 함께 운동, 등산하며 체력을 키우고,

'성실, 끈기, 노력'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애 볼래? 돈 벌래?

다시 돌아가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여전히 변함없다.

아이를 키우며 갈고 닦은 삶의 모든 근육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힘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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