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육아
누구나 크고 작은 마음속 상처들을 가슴에 품고 산다.
어쩌면 사는 것 자체가 상처받는 과정일 수 있다.
불안정한 사춘기를 지나, 그 상처들은 꼭꼭 감춰둔 채 괜찮은 어른인 척 가면을 쓰고 산다.
모르고 살았을 이 상처는 부모가 되는 순간 자식을 통해 민낯을 보기도 하고,
키우는 과정에서 불쑥 튀어나와 나와 내 아이를 괴롭힌다.
나 역시 어릴 적 고집부리는 큰아이가 감당되지 않았다.
문제를 아이에게 돌리며 아이 탓만 했었다.
삼 남매를 키우며 자식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던 엄마,
아이의 눈높이에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나.
우린 서로 닮아 있었다.
나 또한 원망하며 보낸 사춘기 시절이 있기에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 반항한 큰아이는 나의 민낯이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두 아이는 서로 상처 주며 싸우고 있다.
엄마는 언제 내 말 들어준 적 있어요?
최선이었다고 당당히 소리쳤지만, 옆에만 있었지 마음대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엄마였다.
큰아이를 키우며 내가 충족하지 못한 것을 아이를 통해 대신 채우고 싶었고,
어릴 적 사랑받지 못한 '서러운 아이'는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엄마는 조금 더 자란 어른의 모습에서 아이를 감싸야한다. 또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고 먼저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내 세상의 잣대와 기준으로 아이를 대해선 안 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주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어릴 적 나’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체질적으로 약한 자신과 닮은 날 제일 안쓰럽게 지켜봤었다는 말을 하며 한숨짓는 엄마.
작은 오해들 속 풀지 못한 감정들로 덕지덕지 덧칠하며 마음속 방에 나를 가두고 '나 몰라 딸'로 수십 년을 살았었다. 그 말 한마디는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고, 철없던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 후 내 곁을 떠났다.
우리는 살면서 실패할까 두렵고 작은 상처에도 무슨 큰일이 난 듯 서로 아픔을 주고받으며 생채기를 낸다.
큰아이와 갈등하던 어느 날, ‘나’를 보게 되었다.
‘이 아이에게 왜 소리치는가?’
‘아이의 실패가 두려운가?’
아이만 바라보고 산 세월 속 나 자신은 없었다.
행복하지 않은 엄마가, 아이에게 행복한 삶을 살라며 강요할 수 있는가?
아무리 소리친들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살 것이며 이제는 내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네 맘대로 해!
뒤늦게 한마디를 내뱉으며 품에서 아이를 완전히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아이와 나는 서로 홀로서기를 했다.
이제껏 내가 아이를 둘러업고 뛰었다면 지금부터는 자신의 힘으로 뛰어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 정상고지를 향해 달릴 때도 넘어져도 스스로 털고 일어났고 주저앉아 있을 때도 맞잡아주는 손은 없었다. 온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하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했다. 실패도 순순히 인정하고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말없이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실패하고 일어서는 과정을 견뎌내 단단하게 다져가길 바랐다.
그리고, 나를 온전히 바라보았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을 사랑하기로 했다.
누가 손가락질해도 비웃어도 상관없다.
내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자신에게 당당하고 떳떳한 삶을 살면 된다.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 행복을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고 소통하자.
이 모든 건 '죽음, 병, 실직' 등 실패를 경험한 내 삶에서 뒤돌아봤기에 가능했다.
여러 시련은 성장의 관문이었으며, 어린 둘째를 '오빠처럼 키우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며 엄마의 성장을 시작했다.
육아서와 교육 정보들 속에서 아이와 환경에 맞게 적용시킬 노하우와 경험이 있기에 흔들림 없이 키울 자신이 있었다. 돈 없어도, 나이 많아도, 가진 게 특출 나게 없어도 아이 키우는 데 걸림돌이 될 게 없었다. 아이는 어릴 적 엄마와의 단단한 애착으로 몸과 마음을 자라게 할 좋은 습관과 태도를 가진다면 잘 자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행은 달랐다. 첫째를 키우며 놓친 지점을 알고, 여러 시련을 겪으며 성장했기에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 자신감은 무모했다. 둘째는 마음이 넉넉한 아이로 자랐지만 여의치 않은 집안 환경이 걸림돌이었고, 아픈 엄마 곁에서 속앓이 하며 자라야 했다. 그러다가 아이는 자신의 설움을 울면서 토해 냈다. 당연한 듯 익숙하게 주고받는 ‘사랑해’ 한마디면 마음이 전달되었을 거란 착각에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의미 없는 말들만 주고받고 있었다. 공부방 엄마들에게 “아이 눈을 보세요.”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정작 난 내 아이의 눈빛을 읽어 내지 못했고, 아이는 바쁜 엄마 뒤에서 외롭게 서 있었다. 이내 사과하고 안아줬지만 상처받은 뒤였다. 어릴 때 품어주지 못해 상처받은 큰아이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홀로 아픔을 견뎌야 했던 작은 아이. 그렇게 좌충우돌 넘어지고 부딪치며 나를 알아갔고 험난한 삶의 파도를 헤치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며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고 우린 어쩌면 부모 노릇 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남 보다 뒤처지지 않게 해줘야 할 그 많은 물질적인 풍요에 가려 정작 아이의 마음을 놓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보자. 내가 만났던 수많은 학부모들은 예전의 나처럼 아이 때문에 괴롭고, 양육하며 겪은 어려움에 대해서만 호소했다. 혹시 엄마로서 최선이라 생각하며 살진 않은가. 점점 크면서 아이의 단점만 눈에 보이고 아이만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다시 아이를 키우면 잘 키울 수 있다고. 다시 키우면, 다르게 키울 수 있을까. 다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의 성장이 필요하다. 마음이 아프고 힘든 아이들이 많은 요즘. 아이의 눈빛과 시선에서 바라봐야 할 엄마의 태도와 반성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