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한 생명이 이토록 쉽게, 차갑게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을 보며.
의사가 ‘한 달’이라 했지만 석 달을 버텨내고,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안간힘을 냈던 엄마가 생각났다.
석 달 내내,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엄마의 병상을 지켰다.
점점 지쳐가던 어느 날, 아홉 살 큰아이가 울부짖었다.
“할머니 병원에 가지 마!~ 할머니 미워~”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하지만 철이 없다 싶어 순간 꾸짖었고,
이내 둘이 안고 펑펑 울며 아이를 달랬다.
“조금만 기다려. 곧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말은 ‘엄마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었고,
하루라도 엄마를 더 볼 수 있음에 감사한 날 들이었지만
아이는 엄마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살아계실 때 얼굴 많이 봐둬라.”라고 말하는 간병인의 말의 무게를 그땐 알지 못했다.
엄마가 살아 계시니, 엄마의 치열한 싸움이,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차마 마주할 용기조차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떠난 후, 그저 어딘가 사라져 버린 엄마를 그리며 그렇게나 허공만 바라보았다.
삶이란 이토록 귀하고, 단 하루조차도 치열하게 지켜내야 하는 것임을.
엄마는 마지막 숨으로 그 수업을 몸소 보여 주셨다.
엄마가 남겨준 수업을 다 깨닫지는 못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 씨앗처럼 묻혀 있다 허무한 죽음 앞에서 싹을 틔웠다.
그토록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하루’의 삶이 얼마나 눈부신 것이었는지를.
간병인이 했던 그 말이, 얼마나 무겁고 진실한 것이었는지를.
그날 밤의 사건은 또 다른 시련이 아닌,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위대한 가르침을 기억나게 했다.
서울대병원 본관 10층 1004 병동은 말기 암 환자를 위한 암 병동이다.
엄마는 그곳에서 석 달을 보냈다.
의식을 잃은 환자들, 그리고 그 곁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보호자들.
우리는 옆 침대 보호자와 함께 기도하며 아픔을 나눴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환자, 하루라도 더 살리고 싶은 보호자."
삶을 정리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이야기는 온통 가족 걱정뿐이었다.
서로 사랑하고 살기에도 이토록 바쁜 나날들.
우리는 왜 그토록 상처 주고 아파하며 살았을까.
그 병동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엄마를 보내고 철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